한국일보

12월을 보내면서

2009-12-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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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12월의 깊은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는데 12월은 보이지 않는다. 급행열차를 타고 갈 때 차창에 스치는 한적한 간이역의 작은 역사(驛舍) 이름을 보려고 해도 후딱 후딱 지나가는 속도 때문에 읽을 수가 없었듯이 시간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12월에 쌓인 지난 일년 동안의 내용을 볼 수가 없다. 다만 연민하는 정으로 세월을 아쉬워할 뿐이니 마음이 공허할 뿐이다. 이 세상에 마음이 없는 것 어디 있으랴! 찬바람에 얼굴을 내밀고 앉아 있는 바위에도 마음이 있어 무심히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무거운 한숨을 더하여 가뜩이나 무거운 제 몸에 무게를 더하여 더욱더 무거워지고, 내리는 흰 눈에도 마음이 있어 추워 떠는 산천초목과 왜 이민을 와 살아야만 되는지 영문도 모르고 하루 세끼 먹고살려고 애를 쓰는 한 식구의 지붕을 따스한 손으로 덮어준다.

12월은 그렇게 한숨과 아쉬움과 따스함을 섞어 한 달을 만든다. 욕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겠지만 어떤 사람은 이달이 다 가기 전인데도 벌써부터 새해에다 욕심을 부린다. 하루를 무사히 살았으면 그만이고 한 달, 일 년을 잘 살아 왔으면 그만이지 또 욕심을 부린다. 욕심은 꿈이 아니다. 적당한 욕심이면 보기에도 좋고 또한 어쩔 수 없이 맞아들여야 할 일 년을 또 사는 데에도 짐이 되지 않는데 모두가 무거운 짐으로 욕심을 등에 진다. 허리 굽은 노인들이 다 그놈의 욕심 때문에 허리가 굽었겠지... 부부라는 아주 가까운 촌수에도 어느 한쪽이 무거운 짐을 지고 희생을 당하면 주종의 관계이지 부부가 아니다. 모르는 사람도 모여 살게 되면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촌수를 맺고 살게 되는데 이민한 우리에게는 촌수를 맺지 않은 그저 아는 이웃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저 이웃, 그런 것이 오히려 부담 없이 편할 런지는 몰라도 겉돌다 잊어버리고 돌아서는 관계에 지나지 않는 서운한 사회. 진한 색이 되지 못하는 회색의 사회에서는 너와 내가 누구이고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얻지 못하는 의문투성이를 공허한 가슴에 안고 돌아서게 한다. 어머니라는 여인을 얘기할 때 우리는 외모를 따지지 않는데 화장품이 점점 더 고급스러워지고 잘 팔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과연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고뇌와 고통과 이해와 인내를 버무려 만들어 낸 봄 색깔이겠지만 사랑에는 처음부터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한다는 어느 고승의 충고가 긴 여운으로 남는다. 사랑이란 좋으면 사랑으로 남고, 싫으면 이별, 미우면 상대를 헐뜯는 악연으로 남기 때문이다.

올해는 12월에 묻고 싶다. 아니, 해마다 갔다가 다시 오는 12월에 묻고 싶었다. 바위가 앉아서 바라보는 하늘이 길이고, 풀이나 나무들이 욕심 없이 바라보며 키를 늘이는 하늘이 길이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그리움, 그리고 또 그리움. 화장품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졌어도 나이 들어 생기는 주름살은 펼 수가 없는데 사람들이 화장품을 좋아하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다. 얼굴 치장하느라 화장품 가게 들리고, 몸 치장 하느라 옷가게 들리지만 마음 치장 하라고 문을 열어 놓은 상점은 한군데도 없다.조용한 눈 하나도 없는 이민 사회, 어디를 가나 눈을 감지 않는 카메라의 렌즈처럼 무언가 바쁘게 찾아다니는 눈빛뿐이다. 무엇을 벌었다고 할 것이며 무엇을 흘리며 살았다고 할 것이며 무엇을 남겼다고 할 것인가? 바쁘게 지나가는 시커먼 먹구름도 빗방울만큼은 깨끗하고 맑게 내려 준다. 영문도 모르게 그저 바쁘기만 한 타향살이, 한 인생 살아가는 목숨에 무슨 제목으로 바랄 것이 있겠느냐만 12월에 내리는 흰 눈처럼 조용히 맑거나, 향기 품은 꽃 봄의 정오처럼 따스하고 깨끗한 그리움을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뿌려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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