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늘맞이 배움터

2009-12-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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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길(수필가)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 책 속에 ‘하늘맞이 배움터’가 있다. 거기에는 심심산천의 외딴 섬에서 구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린 성경 말씀 같은 글이 있는다. 2004년에 이글을 쓴 아이들 엄마는 2006년에 하늘나라로 45세의 젊은 나이에 떠났다고 한다. 그 험한 산골에 아이들을 데리고 갈 때는 언제며, 어린 5남매를 남겨 놓고 어떻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서울에서 약방하면서 잘 나가던 10여년을 접고, 소비향락문화의 급격한 팽창과 선과 악의 가치 전도가 해일처럼 세상을 쓰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린 5남매와 함께 강원도 심심산골, 선이골을 찾아든 것이다. 전기도, 전화도 없고, 우체부도 오지 않는 태평양의 무인고도가 바로 여기였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면서 돌밭 같은 척박한 땅을 일구어 옥수수나 콩을 심고, 산나물로 연명했다는 이야기다.

방 한 칸에 7식구가 같이 자고 먹고, 요강에 변을 보는… 요즘 이런 삶이 어디 있을까. 편리한 삶에 익숙했던 지난 40년에 비하면 이 산중에서는 어느 하나 온 몸으로 떼우지 않은 게 없었다. 찬 개울물에 빨래를 할 때면, 문명의 이기를 마음껏 즐기던 환상에 젖곤 했으며, 약방을 운영하며 짭짤한 살림을 했던 추억이 가슴에 와 닿을 때마다 서울로 되돌아가고 싶었다고 한다.나는 이글을 보며 산천으로 아이들을 왜 끌고 갔나며 냉소를 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도저히 감당 못할 역경을 그 낙으로 삼고, 좋은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용기에 고개 숙여 감탄해 마지 않는다. 그들은 누구도 시도해 본 일이 없는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진리를 자연 속에서 터득하는 ‘하늘맞이 배움터’에서 살며 인생을 공부했다. 그녀가 교장선생님으로서 아이들에게 성경과 천부경, 역사와 산수 5남매를 한 클라스로 만들어 가르치는 그 정성이 눈물겹도록 가슴에 닿았다.

험한 사회로 진출하기 전에 아이들 마음에 기초 공사를 단단히 하여, 물질 속에 정신이 썩지 않도록 하려는 엄마의 갸륵한 사랑을 보며 참 멋진 엄마다 싶었다. 그녀가 3년간의 산 생활을 통하여 얻은 천지인(天地人)이 하나임을 깨달은 것은 어느 고승의 터득한 진리에 못지않다는 데 대한 경탄을 금치 못했다.
부자가 되면 하늘나라 가기가 코끼리 바늘구멍 빠져 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데, 소박한 평민이 되어 하늘과 땅의 뜻에 따라 참된 인간으로, 나무와 꽃들이 욕심 없이 제 살길을 살면서 자연(세계)에 이바지하는 그런 삶을 살겠다는 뜻이 아닌가.그녀는 이제 가고 없다. 그러나 언젠가 이 어린이들이 우리 사회에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가 되게 하는 큰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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