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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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뉴욕에서 만나는 우리술들이 반갑다

2009-12-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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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영(취재 2부 차장)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한 취재가 두 건 있었다. 뉴욕에 시판된 참살이 막걸리 시음회와 명품 소주를 표방하는 안동 소주의 시음회 행사였다. 공식적이고 떳떳하게(?) 업무 중 음주를 즐길 수 있어 좋았고, 갈수록 뉴욕에서 다양하고 고급스런 한국 술들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예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한 한국 서적 중 ‘전통주 기행’이란 책을 정말 재밌게 본 기억이 난다. 한산 소곡주, 전주 이강주, 부산 산성 막걸리, 진도 홍주 등 8도의 명주들과 그 술에 어울리는 지역 특산 음식에 관한 책이었는데 정말 읽으면서 침이 꼴닥꼴닥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책을 읽으며 맘에 맞는 주당 친구들과 꼭 전통주 여행을 떠나리라 다짐했었는데 막상 한국에 갈 기회가 생겨도 뜻을 이룬 적은 없고 그저 술집에서 맛 볼 뿐이었다. 그나마 미국 땅에서는 그 술들을 접할 기회마저 한정되었는데 계속 전통술들이 소개된다면 아쉬움이 많이 풀리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한민족은 원래 발효기술에는 특별한 일가견이 있던 사람이었다. 기록에도 삼한 시대부터 이미 전통주의 가장 원형인 막걸리 형태의 곡주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고려시대에는 정교한 수준의 다양한 양조기술이 심화됐다. 조선시대에도 각 지역 특산주가 300개가 넘었고 각 집마다 고유한 노하우의 술이 담가졌다.
알다시피 일제 강점기와 이후의 군사 정권을 거치면서 이런 전통주의 맥이 끊겼다가, 90년대 이후 다시 활성화되며 대중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일본에서 막걸리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만 기자는 전통주야말로 한식 세계화의 또 다른 첨병 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한다. 프랑스 요리와 와인, 꼬치구이와 정종이 자연스럽게 연상되고 각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과 정종의 종류 또한 무수하듯이 음식과 술은 불가분의 관계다. 한식당에서 각종 한국 음식에 어울리는 다양한 전통주들이 준비된다면, 거의 소주 한 종류로 한정되는 현재의 테이블보다 진정한 한식 세계화의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닐까? 맛도 좋지만 무엇보다 대부분의 전통주는 건강에 좋다. 약재를 재료로 쓰는 경우도 많고 알칼리성이며 두통과 숙취가 없다. 옛 선비들이 음주를 하며 시를 읊을 수 있었던 것은 몸은 노곤히 취했어도 머리가 말짱해서였다고 한다. 나쁜 술들은 정반대다. 그래서 머리가 먼저 취하면 기운이 남은 몸으로 행패를 부리는 것이다.

건강이라면 깜박 넘어가는 미국인들한테 몸에 좋은 전통주 선물은 또한 얼마나 환영받을 것인가? 진양주, 송엽주, 과하주, 두견주, 옥미주, 금향주 등 다양한 전통주들이 계속 뉴욕에 상륙하기를 기대한다. 자꾸 침이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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