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산 안창호선생을 재조명한다

2009-12-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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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조(전 언론인)

도산 안창호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많이 서술되고 책이나 간행물로 나왔다. 그분에 대해 내가 거론하고자 하는 것은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에서다. 그는 비록 현대 잣대로 보면 학벌은 별로 신통치 않은 인물이다. 이 세상에 영향을 준 많은 인물들은 학벌보다 인간성이 더 중요한 것과 같이 안창호선생도 인간성이 아주 강직하고 부질없는 욕심과 명예를 멀리한 분이다.

20세기 전후 구 한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 옳게 잘 사는 공평한 세상을 꿈꾸었던 많은 독립지사들은 우리의 본래 갖고 있던 하나님 사상(로마의 콘스탄틴왕에 의해서 시발되고 그후 2백 여년 후 제3차 니케야회의에서 결정된 ‘the God’와는 다름)과 공의로운 사회를 위해 사리사욕과 이 세상의 명예를 헌신짝 같이 내 던지고 오직 조국의 구국 대의와 광복을 추구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올바른 인간성을 가지려고 자신을 열심히 수양했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본을 보여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도산 안창호선생은 수양 동우회니 흥사단이니 하는 단체를 조직, 조국의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인격을 닦고 타인과 사회와 온 인류의 화평과 상부상조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지향하였던 인물이다. 그분과 이탁(李鐸)선생은 요새 말로 하면 ‘단전호흡과 명상’으로, 다시 말해서 ‘도 (道)를 닦던 분들’ 이었으리라 사려된다.(구익균 선생의 증언: 이분은 초기에 나의 조부 김지간님과 도산 선생, 그리고 외조부 이탁 선생을 도왔고 8.15 전에는 김구 주석을 보좌하였던 분이다)

당시 조국 광복 운동에 투신하였던 여러 지사들은 여러모로 이런 도(道)에 관심과 실천을 위해 노력하였고 우리의 올바른 역사관을 가졌던 분들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예로 단제 신채호 선생(일제에 의한 불법적인 한일합방 전, 김지간님과 도산 선생, 이갑 선생, 이동휘선생, 이종호 선생 등과 같이 자주 독립운동의 방침을 수립한 청도회의에 참여), 환단 고기(桓檀 古記)를 편집한 계연수 선생, 독립혈사를 지은 박은식 선생 등, 그 외 거명을 일일이 할 수 없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 조상의 본래 뿌리인 하나님 사상과 이화세계의 이상 구현을 향하여 노력하였던 분들이다.

이는 나의 어머니(이탁 선생의 딸로서 중국 망명 시절 도산선생과 가까이 지냄)와 할아버지(도산 선생과는 젊었을 때 부터 아주 가깝게 지내며, 대성학교도 같이 운영, 조국 광복을 위해 뜻을 같이한 도산 선생의 절친한 동지), 안맥결여사(도산 선생 조카 딸로 나의 어머니와 아주 가까운 사이), 안신호 할머니(도산 선생의 여동생), 또 이탁 외조부와 같이 일했던 여러 독립지사
들의 말을 듣고 내 나름대로 이야기를 개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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