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Keeper…

2009-12-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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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취재 1부 부장대우)

2주간 서부에서의 달콤한 휴가를 끝내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지난 6일 오후. 보통은 기내에서 잠자기 일쑤지만 나름 시차적응 차원에서 영화를 내리 2편이나 보게 됐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이 시스터즈 키퍼(My Sister’s Keeper)’. 지난해 말 ‘쌍둥이 별’이란 제목의 한국어 번역판까지 나왔던 베스트셀러 작가 조디 피콜트의 원작을 닉 카사베츠 감독
의 손에서 영화화한 것이다.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무심코 선택해 깜깜한 조명 아래 기내 개인 스크린으로 한참 영화를 감상하다보니 남모르게 많은 눈물을 쏟게 한 작품이자 여러 생각을 스치게 만든 영화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백혈병에 걸린 딸을 살리려는 부부가 계획적 임신으로 골수가 완벽히 일치하는 둘째 딸을 낳고 이렇게 태어난 둘째 딸은 어려서부터 언니에게 숱하게 골수를 기증한 것도 모자라 급기야 신장 기증까지 강요받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자신의 신체에 대해 부모가 아닌 자신 스스로 결정권을 갖게 해달라는 ‘의료해방’을
외친 둘째 딸이 부모에게 제기한 소송을 중심축으로 영화는 가족이 처한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구성원 각자 나름의 시각으로 1인칭 시점에서 설득력 있게 풀어나가는 형식을 취한다.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그 누구도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과 각자의 입장들은 살면서 진정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줄거리 전개는 실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특히 의료해방 소송까지 불사했던 둘째 딸의 모든 행동이 사실은 사랑하는 가족과 더 오래 함께 하고 싶으면서도 더 이상 가족의 희생을 원치 않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백혈병 환자 첫
째 딸의 주도로 진행됐다는 반전에서는 언뜻 보면 여동생이 언니의 수호천사로 보이지만 언니 역시 여동생이 원하는 여자의 삶을 지켜주고픈 동생의 수호천사이기도 하다는 영화의 제목이 함축한 또 다른 의미를 엿보게 된다.

영화가 던져주는 수많은 메시지 중에서 특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보듬는 영화 속 가족들의 너그러운 사랑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가족이나 친구 사이조차 갈수록 접하기 힘든 모습이고 이곳 한인사회에선 더더욱 기대할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직후 힘들게 맞이했던 2009년도 이제 남은 일수가 두 손으로 꼽을 정도가 됐다. 과연 올 한 해 동안 우리는 얼마나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과연 자신이 좋은 가족이자 좋은 친구, 좋은 한인사회 구성원으로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 되돌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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