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들의 가슴앓이’

2009-11-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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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

“너랑 나 사이에 무슨 계약서야...”
한인사회의 정서 상 지인들끼리 돈거래를 하면서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제는 돈을 건내주고 받을 때는 호형호제하던 사이가 갚을 때가 되면 갑자기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욕설까지 퍼붓는 그야말로 갈 때까지 간 원수 사이가 되기도 한다. 돈거래 한번 잘못했다가 사람 잃고 돈도 잃는 경우가 바로 이런걸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 기자실에 걸려오는 제보전화 가운데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 채권채무 문제다. 주로 ‘아는 언니가’, ‘아는 형이’로 시작하는 돈거래 상담은 대부분 수만달러의 돈을 건네줬다가 이자는커녕 페니도 못 건지고 가슴앓이 하는 경우다.


“계약서는 쓰셨나요?”라는 질문을 하면 백이면 백 “어떻게 아는 사이에 계약서를 디밀어요. 마음은 있었지만 가족같은 사이니까 그냥 믿었죠”라는 대답을 한다. 답답하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싶다고 전화를 했는데 계약서가 없으니 돈거래가 있었다는 증거물이 없는 셈이다.

물론 제보자들도 신문사에 전화하기 전에 경찰서에 한 두번은 찾아가 본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시나 싶어 “경찰서에 한번 가보시지 그래요”하면 “가봤는데 계약서가 없어서 소액 민사재판으로 밖에 안되다는데 민사재판이면 몇 년씩 걸린다면서요”하며 말꼬리를 흘린다. 결국은 수년간의 재판을 해야 처벌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가장 안타까웠던 사연은 교회에서 만난 어느 지인에게 15만달러나 빌려줬다는 제보자의 전화이다. 이야기인 즉 잘 아는 사람에게 수년에 걸쳐 1만~5만달러씩 야금야금 빌려준 돈이 어느덧 15만달러에 육박한 것이다. 갚아줄 것을 독촉해도 자꾸 피하길래 집에 쫓아가보니 짐을 다 싸고 도망갈 준비를 했더라며 신문에 낼 수 없냐며 제보한 것이다. 역시 계약서가 없어 경찰에서 ‘거부’당한 사기사건이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있다. 지인들끼리의 돈거래에 있어서 가장 명심해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잘 안다고해서 계약서 없이 ‘믿고’ 빌려 주다가 낭패를 당하기 쉽다. 친한 사람일수록 더욱 돈거래는 신중해야 한다고 하지 않은가..

사람 잃고 돈 잃고 땅을 치는 일이 없도록 금전거래 일수록 더욱 신중히 처리해야 할 것이다.

한인사회가 서로 믿는 신용사회가 되길 바라며 돈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한인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재희(취재 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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