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가을이 소리 없이 깊어가는데 우리의 마음은 한없이 우울하고 슬프기만 하다. 이럴 때 늘 읽곤 했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다시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독일의 작가 안톤 슈낙이 쓴 이 글은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편 구석에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해서 ‘철장 안에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무 위에 떨어지는 백설, 이 모든 것이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로 끝나는 이 글 속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60여 가지나 나열되어 있다.
역시 인간의 근원적 슬픔과 원초적 고독을 다루어서 읽고 나면 열거된 그 슬프게 하는 것들이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고 순수하고 아름답게 치유시켜 주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금년 563돌을 맞이했던 한글날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종대왕 동상 제막식이 성대하게 거행된 뜻 깊은 한글날이었다. 그 동상은 왼손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록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든 거대한 동상이었다고 한다.
우리 한글의 우수성이 갈수록 세계에서 인정받게 되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이고 있는 한글 세계화운동에 발맞추기라도 한 듯이, 말은 있지만 글(문자)이 없는 6,000여개 종족 중의 하나인 인도네시아 찌아찌아 족이 한글을 자기들의 공식 문자로 인정하였고, 뒤이어 라토 뱅케 족이 한글을 그들의 표기어로 고려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무엇일까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2009년에 들어와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과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들의 서거, 마이클 잭슨과 로버트 케네디 상원 위원의 죽음이 우리를 슬프게 하였고, 과학 문명과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다고는 하나, 거기에 도전하는 알 수 없는 병들, 암이나 에이즈는 접어두고라도 사스, 광우병, 조류독감, 신종플루 등 수 많은 병들의 끝없는 명멸, 거기에서 오는 혼란과
아우성, 또한 미디어법, 사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등으로 빚어지는 고국의 어지러운 정치 행태, 그리고 아직도 깊은 수렁에서 허덕이며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세계 경제 불황과 점점 나약해져 가기만 하는 미국의 위상도 우리를 매우 슬프게 한다.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 뿐이랴. 한국의 영어 광풍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과 한글 경시, 동포 자녀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는 주말 한국학교의 남발로 인한 한국어 교육의 질적 저하. 일찍이 30년 전부터 주 정부의 정식 인가를 받고 비 영리재단으로 출발, 선두주자로 탄탄하게 달려온 한국학교들이 심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그중 한 한국학교가 또 다른 교회 한국학교에 흡수되어 버린 사태를 보면서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긴다. 특별히 그 학교의 마지막 교장 선생님의 침통한 슬픔을 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만 가고 있는 이 현실이 또한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이경희(교육가/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