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미노 쓰러뜨리기

2009-11-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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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친구 그녀는 삼남매에게 배낭을 지워서 베를린으로 급히 보냈다. 그 이유를 묻자 ‘역사의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게 하려고...’라는 답이 돌아왔다. 바로 20년 전의 일이다. 그들은 이미 장년이 되어서 제각기 다른 분야의 좋은 일꾼이 되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독일인들만 행복하게 만든 게 아니고, 온 세계인이 받은 큰 혜택이고 기쁨이었다. 독일은 극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었다. 독일인들은 아직도 통일통을 앓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치유될 것이다. 여기에 이른 일련의 사태 진전을 보면 그들은 줄기차게 통일을 위한 노력과 몸짓을 계속하였다. 이 중심에 있던 것이 베를린 장벽이었다. 동독 공산정권이 ‘반파시스트 보호벽’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쌓은 베를린 장벽은 독일의 동서를 분단하였다. 이 장벽의 붕괴는 독일의 냉전체제를 종식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 장벽 붕괴 20돌 축제를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그 중에서 특출하게 느낀 것은 브란덴부르크문 인근에 실제 장벽이 있던 길을 따라 1.5km에 걸쳐 세워진 플라스틱 도미노 패널들이다. 이것들을 폴란드 독재 정권은 물론 동독과 동유럽 공산주의 세력을 붕괴시키는 데 1등 공신이었던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이 첫 도미노 패널을 떠밀게 하였다. ‘도미노 쓰러뜨리기’는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고 전한다. 이 준비된 1,000여개의 패널은 독일 학생들과 전세계 예술가들이 높이 2.5m의 강화스티로폼 위에 그림을 그려 완성하였단다. 사진으로 본 패널들은 디자인이 다양하고 화려하였다. 누가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하였을까. 도미노 패널을 쓰러뜨리며 20년 전 베를린 장벽 붕괴 현상을 재연한다는 생각이 기발하다. 전에도 독일 유명 작가들의 이름이 새겨진 책들을 포개 놓은 조형물 전시를 보고 감탄한 일이 있다. 모든 행사는 기획이 잘 되
어야 성공한다고 본다.


좋은 기획은 풍부한 생각에서 생산된다. 생각은 사물에 대한 관심에서 싹트며 상상으로 자란다. ‘도미노 이론’은 세워 놓은 도미노 골패 중 하나를 쓰러뜨리면 연달아 다른 골패들이 차례로 쓰러지게 되는 현상에 빗대어 하는 말이다. 그래서 전에는 주로 어떤 지역의 한 나라가 공산화되면 인접 국가들도 차례로 공산화된다고 할 때, 사용한 이론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사태가 원
인이 되어 주변에 잇달아 비슷한 사태를 불러일으키며 확산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번에 베를린에서 있었던 ‘도미노 쓰러뜨리기’는 같은 이론이지만 그 현상의 방향이 다르다. 즉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현상을 상징한다. 베를린에서 시작된 골패들은 동유럽을 민주화하였고, 드디어 EU를 결성하여 27개국이 이에 참가하였다. 중요한 것은 도미노의 첫 골패가 가지고 있는 방향이다. 이 도미노의 골패가 북한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것도 빠른 시기에.

교육에서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가정에서 첫 어린이를 잘 키우면 다음 어린이들이 본받는다. 학교에서도 초급에서 기초교육이 잘 이루어지면, 고학년으로 진급하면서 계속 향상한다. 자녀들이 좋은 친구를 사귀면 배우는 점이 많고, 그를 흉내내게 된다. 만약 한 번 실패했다고 용기를 잃으면,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한 번 칭찬이나 격려의 말을 들으면 계속해서 일의 성과를 올리게 된다. 베를린 기념식 도미노 패널을 갖고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일부는 구입 의사까지 밝히고 있다는 이야기다. 왜 그럴까. 하나의 역사적 기념품으로, 재미있는 디자인으로, 도미노 이론을 기억하려고...등 이유가 다양할 것이다. 이런 방법도 있다. 앞의 모든 것을 합쳐서 내 마음
에 패널 하나를 만들어 간직하는 것이다. 이것도 같은 효과가 있을 듯하다.
베를린에 살고있는 친구가 선물을 보내왔다. 인조 수정체 속에 브란덴부르크문이 그려져 있다. 그가 주는 메시지를 바로 알 수 있다. 우리의 DMZ 장벽을 없애는 노력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기원이다. 그것은 통일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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