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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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에 울려 퍼진 추모곡

2009-11-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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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 (의사)

흩어졌던 가족과 친척들이 모두 함께 모이는 추수감사절이 다가온다. 오븐에서 갈색 빛으로 익어가는 터키. 달콤한 호박 스프 냄새와 함께 식구들의 꽃피우는 이야기와 웃음소리들은 가족들이 함께 연주하는 즐거운 협주곡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아프간 전쟁터에서 포화가 멈추지 않고 있고 전쟁후유증으로 피로 물들고 있다.지난 11월 초 ‘싱글 맘’인 킴벌리 먼리 경사는 포트후드 미군기지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현장에서 범인을 쓰러트렸다. 서부활극 같은 총격전을 벌린 그녀는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녀가 범인을 향해 날린 네발의 총알에 맞아 중상으로 지금 치료받고 있는 범인은 하반신이 마비되어 다시는 일어설 수도 걸을 수도 없게 되었다.

역사상 미군기지 최악의 총기난사사건의 범인은 아랍계 니달 하산소령이다. 앞으로 그의 단독범행인지 테러리스트의 그물망에 걸려 있는지는 수사가 진행 중이다.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무슬림의 극단주의자들인 지하드 자살 폭탄으로 부상당한 군인들을 상담하는 현역 정신과 의사였다. 총기난사로 숨지거나 다친 군인들도 대부분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기로 되어 있었다.포트 후드기지는 참전 군인들의 전쟁 후유증 스트레스 해소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실시해온
주요 기지였다. 전쟁의 악몽으로 스트레스장애를 겪는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그 자신이 심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였다.


그는 마술사 혹은 슈퍼맨이 아니었다. 동료 이슬람인들 (Fellow Muslim)과 싸워야 하는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심한 갈등을 느꼈을 것이다.2007년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끔직한 조성희 총격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던 그의 분노는 압력솥에 갇혀 있던 증기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했다. 그때 미국주류 언론은 한인들이 집단의식으로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소수민족과 아랍인에 대한 혐오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9.11 테러 공격사태 이후 많은 아랍계 미군 장병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다. 하산 소령 역시 요르단계 팔레스타인 출신이 이민자의 아들이다 미 국방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아랍종교를 이해하고 유창한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는 아랍계 미국 병사들의 입대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그들에게 포용정책으로 미군기지에 회교도의 기도실을 갖추어 놓고 회교 성직자를 근종요원으로 모집해 놓고 있
다. 이번 총격사건은 아프간 증파를 앞둔 미 국방부의 딜레마다.

2008년 11 월 신경정신과 의학저널에 실린 통계에 의하면 20만 6000명의 2002 년에서 2007년까지 이 정신과 진료를 받은 재향군인 중 41%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그 중 20%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나머지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 자살 등이다. 이렇게 딱딱한 의학통계를 들추지 않아도 전쟁후유증을 앓고 있는 재향군인들과 가족들의 고통은 어두운 사회 그
늘의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다.

지난 주, 포트후드 미군기지에서는 총기난사로 희생된 병사들의 장례식이 TV로 중개되었다. 군복과 군모를 쓴 흑인 여군의 그들의 넋을 기리는 청아하고 맑은 추모곡이 하늘로 울려 퍼졌다. 미군기지에 울려 퍼진 추모곡은 참석한 참전 군인들과 가족들의 구멍이 뻥 뚫린 가슴을 영혼으로 가득 채워주는 듯 했다. 추수감사절에 충격과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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