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존 딩겔(John Dingell)의원의 정치

2009-11-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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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한인유권자센터 소장)

2001년 말, 민주당 최고참 의원인 미시건의 존 딩겔 의원은 주말에 지역구로 가려고 워싱턴의 레이건 공항을 찾았다. 그는 80평생 절반을 연방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정가의 거물중의 한사람이다. 당시 미국의 모든 공항은 9.11 테러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공항 이용객 전원에 대해서 철저한 짐 검색은 물론이고 몸 검색을 실시하고 있었다. 딩겔 의원이 검색대를 지날 때에 금속탐
지기가 울렸다. 그가 소지품을 다 꺼내 놓은 상태에서도 금속탐지기는 울렸다. 그제서야 딩겔 의원은 그가 20년 전에 낙마를 해서 무릎에 철 관절 이식을 했다는 것을 공항 보안요원에게 설명했다. 그러한 설명에도 보안요원은 요지부동했다. 물론 보안요원은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결국 딩겔 의원은 속옷 차림으로 조사를 받은 뒤에야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예외 없는 철저한 원칙주의를 존중하는 미국 노정치인의 시민정신이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었다.

존 딩겔 의원은 53년째 의원직을 고수하고 있는 최장수 하원의원이다. 딩겔 의원은 바락 오바마 대통령이 태어나기도 전인 1955년 12월13일 연방하원에 입성했다. 53년째 미시건주의 터줏대감이다. 84세의 최고령 의원이지만 가장 왕성한 입법 활동을 하는 의원이다. 435명의 하원의원 중에 1950년대 입성한 유일한 의원이다. 2005년 12월 그의 하원입성 50주년을 기념해서 부시 대통령 부부는 특별히 그를 백악관으로 초청해서 점심을 내기도 했으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DC의 국립박물관에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열기도 했다. 2008년 선거를 통해서 그는 26선의 의원이 되었으며 “ 내 몸이 움직이는 한 나는 하원의원이다 ”라고 하면서 좀처럼 은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딩겔 의원은 2009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내가 하원에 들어 온 1955년, 그 해에 흑백분리 정책에 반발하는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고 나는 그 현장으로부터 마침내 흑인대통령까지 함께 왔다”라고 했다. 연방하원 22개의 상임위 중에 예산이 가장 많고 입법 과정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에너지통상(상무)위원장직을 고집해 온 딩겔 의원은 2009년 회기중엔 에너지통상위의 명예위원장이다. 오바마정부와 환경정책과 다른 노선을 견지하는 바람에 위원장직에서 밀렸지만 후임인 캘리포니아의 왁스맨 위원장은 최고참인 그를 명예 위원장(Chair Emeritus)으로 임명했다.

딩겔은 조지타운대학을 졸업해서 디트로이트시의 검사가 되었다. 연방하원이었던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서 29살에 하원이 되었다. 지금 한인사회(이민자그룹)의 노인층들이 크게 덕을 보고 의존하고 있는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 Program)는 바로 딩겔 의원의 아버지인 존 딩겔 시니어(John Dingell, Sr)의원이 1943년에 주도해서 상정하고 통과시킨 법이다. 존 딩겔의 아버지는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National Health Insurance)의 최초의 제안자이다. 그 후로 반세기가 지났고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지만 딩겔의 정치신념은 아버지에 이어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하원에 입성하면서 자동차 산업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일에 집중했으며 총기규제를 강력하게 반대해 왔다.

딩겔 의원은 그의 아버지가 제안한 의료개혁을 그동안 포기하지 않고 매 회기마다 제안하고 추진해 왔다. 딩겔 의원은 의료산업의 막강한 로비에도 굴하지 않고 이 일을 추진해 왔다. 상원 전체회의를 앞둔 의료개혁안을 바라보는 ‘존 딩겔’의원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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