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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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죽음과 삶의 경계선

2009-11-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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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죽음과 삶의 경계선은 그리 멀지가 않다. 호흡이 끊어지면 죽음이요 호흡이 계속되면 삶이다. 그러니 죽음과 삶의 경계선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달려 있다. 사실 우리는 호흡을 감지하지 못하고 산다. 무의식속에서도, 혹은 잠 속에서 호흡을 하며 살아도 호흡을 하는지 안하는지 전혀 무감각으로 살 때가 많다.

사람뿐만 아니라 나무도 호흡을 한다. 산소를 뿜어내고 수소를 받아 마신다. 물속에 사는 고기들도 호흡을 하며 산다. 흙으로 만든 항아리도 호흡을 하며 산속에 널려 있는 바위들도 호흡을 한다. 바위들이 죽은 것 같지만 다른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위의 죽음과 삶, 그리고 사람의 죽음과 삶은 무엇이 어떻게 틀린가. 그것은 사람이 바위가 되어보지 않는 한 바위의 삶과 죽음은 논할 수 없다. 다만 사람을 포함한 생물과 식물 그리고 움
직이지 못하는 광물의 차이점을 찾아본다면 사람의 죽음과 다른 것들의 죽음을 비교는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움직이는 것, 즉 생물은 호흡의 끊김과 이어짐에 죽음과 삶이 연결돼 있다. 호흡의 끊어짐이 곧 죽음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죽음도 호흡의 끊어짐에 달려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 즉 식물도 마찬가지다. 나무와 풀들도 호흡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물을 먹지 못해 말라 비틀어져 죽으면 내쉬는 산소도 들이쉬는 수소의 호흡도 끊긴다. 나무와 풀들은 수 미터 반경 혹은 다른 곳으로 스스로 이동은 못한다. 하지만 그들도 움직이는 것들이다. 씨앗이 뿌려져 싹이 나고 나무가 되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과정 자체는 움
직이는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 느려 움직이는 것 같지 않지만 그들도 살기 위해 자라나며 꿈틀대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물의 삶과 죽음은 어떤 것인가. 바위가 살아있음은 사람의 눈에 인식되어 존재하는 것이 곧 살아있음일 것이다. 우주를 살아있는 존재로 본다면 광물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살아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의 감각과 생각으로는 바위가 살아있다고 볼 수 없지만 광의의 의미로는 살아 있다. 하늘도 살아있고 땅도 살아있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들이 있다. 고속도로에서는 짐승들의 죽음이다. 동네에서는 비둘기들의 죽음이다. 그들의 죽음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질문이 있다. “그들에게도 영혼이란 것이 있을까?” “그들에게도 영생이란 것이 있을까?” 아니면 “그들에게도 삶과 죽음을 논하는 생각이란 것이 있을까?”등등이다.

어리석은 질문인 것 같다. 그러나 어느 고등종교에서는 생물이 죽은 다음에는 윤회가 되어 다른 생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 하여 살생을 금하는 종교도 있다. 사람에게 해가 되는 버러지 한 마리, 쥐 한 마리도 죽이지 않는다. 집안에 그런 것들이 있으면 그냥 밖으로 내 보내지 절대 죽이지는 않는다. 그 종교에서는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에 치여 죽은 비둘기의 죽음도 헛되지 않은 것이다. 그 비둘기가 다시 다른 생으로 태어나면 사람이 될 수도 있기에 그렇다. 한 고등종교의 생명을 귀중히 여겨야 된다는 살생금지의 교리지만, 삶과 죽음 관계에 중요한 무엇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 교리 안에는 보이지 않는 호흡이 연결되는 무엇이 있다.

요즘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총기로 인한 사람들의 죽음을 들을 때 생명경시의 풍조가 극에 달했음을 본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무차별 총기 난사의 희생자가 되어 그 가족들을 얼마나 슬프게 하는지 모른다. 죽은 사람은 모른다 하자. 그러나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할 부상자들의 삶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죽음이란 이렇듯 멀리 떨어져서 우리를 바라만보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느 때에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호흡의 끊김과 이어짐은 하루 밤사이에도 일어날 수 있다. 심장마비 등으로 인한 돌연사의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호흡이 이어지는 순간순간을 정말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의 삶이 그리 긴지 알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오래 살면 100살은
넘긴다.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도와주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만큼 좋은 축복이 없음을 생각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선은 호흡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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