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지막 여행‘

2009-11-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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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업(자유기고가)

겨울이 오는 문턱은 언제나 쓸쓸하고 정갈하다. 또 다시 살아가야할 겨울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지난달 주문한 ‘마지막 여행’ 이란 책을 받았다. 1981년부터 2000명이 넘은 말기 환자의 마지막 시간을 보살폈던 미국의 호스피스의 경험의 이야기로 생의 마지막 시간에 단계별로 겪게 되는 의학적, 윤리적인 문제의 해결책이 들어있었다. 수천명의 환자와 그 가족들을 돌보면서 생의 마지막 시간에 피할 수 없이 겪게되는 눈물과 사랑, 혼란과 갈등을 목격하면서 평화롭고 아름답게 마지막 시간을 보낸 용기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이 책은 ‘마지막 여행’을 떠나 보냈거나 준비하는 우리들의 삶에 많은 묵상을 하게 했다. 우리의 정서와 다소 다르기는 했으나 한편으론 참으로 놀라운 사실들이었다. 환자의 친구들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사실 가족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지만, 친구들은 내 의지로 선택된 사람들이다. 환자를 위하여 친구들이 할 수 있는 작별파티를 마련하는 일이다. 환자 친구와 힘께 찍었던 추억의 사진들을 크게 확대하여 벽에다 걸고?형형색색 부케를 장만하고 친구가 좋아했던 음악과 노래, 경우에 따라서는 확성기를 준비하여 친구가 하는 말을 모두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친구가 이 세상에 와서 얼마나 보람있게 살았는지를 우리에게 말할 수 있게 함이다. 아마도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곧 생을 마감해야 할 사람에게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않겠으나 그는 잠시나마 고통과 공포를 잊고 우정을 믿으며 친구의 소중함을 알고 평화로운 순간을 갖게 될 것이다.나 또한 환자인 당사자가 되어보기도 하고 그의 가족과 친구가 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만물이 겨울 채비를 하는 이 계절은 때때로 내가 세상에 홀로된 고독을 느끼게 한다. 두려움으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것을 토해내고 자성으로 일깨워주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무심코 날려버린 시간들, 구겨져 버린 삶의 조각들 속에 끼어있는 모든 불순물을 쏟아내고 순수한 나로 돌아오게 한다. 작은 기쁨으로 크나큰 상처가 치유되는 불가사이한 사랑의 인연으로 이어진 사람들이 떠오른다. 하루의 애환이 평생처럼 느껴지며 불현듯 무언가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서글픔...새벽하늘의 싸늘한 별빛을 바라보며 진정한 고뇌와 쓴맛, 단맛의 선물을 가져다준 세월을 고마워한다. 앞으로도 이 세월에 이 자연에 녹아서 살며 사랑과 헌신의 제단에 버림받지 않은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라고 타이르고 있다. 그 어느 날 우리는 각자 뿌린 대로 거두고 홀연히 마지막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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