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뉴욕이 좋아”

2009-11-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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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뉴욕의 가을’ 하면 가을의 배경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센트럴 파크의 샛노란 은행잎이 떠오른다. 리처드기어와 조안 첸이 주연한 이 영화는 형형색색 물든 뉴욕의 가을풍경이 마치 한폭의 수채화 같은 느낌을 줄 만큼 그 장면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미국에 와서 뉴욕에 살고 있지만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특히 이 영화를 보고 나서다. 이후로 어떠한 이유로든 뉴욕의 가을을 떠나기 싫어 아마도 내가 미국
에 사는 한 이 도시에서 발을 떼지 않을 것이라는 어린애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 영화이야기를 들추는 것은 요즘 뉴요커들 가운데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한인들이 꽤 있다는 소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주하는 사람들 중에는 물론 이유가 특별히 있어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뉴욕이 춥다거나 아니면 너무 복잡하다거나 아님, 물가가 너무 비싸다거나 하는 이유로 떠나려고 한다면 웬만하면 그냥 머무르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뉴욕의 매력은 사실 어느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점이 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수많은 인종이 서로 부딪치며 뜨겁게 살아가는 것이 이 뉴욕의 특징이자 지닌 매력이 아닌가 싶다. 톱니바퀴처럼 쉴새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뉴욕의 심장부, 이 도시에서 야망과 꿈을 실현하려는 젊은이들이 매일 활기차게 움직이며 저마다 색다른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서류미비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무작정 이 땅에 찾아와 생계현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피부색과 나라, 인종을 불문하고 함께 끊임없이 돌아가는 이 도시의 에너지는 뉴욕에 사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이다. 그래서 어떤 뉴요커는 뉴욕에는 진짜 삶, 생동감있는 라이프가 있다면서 특별히 거센 경쟁이 있는 뉴욕은 매우 스타일리시하고 역동적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 뉴욕은 피부와 언어, 문화가 다 다른 인종들이 모두가 매일 매일 눈만 뜨면 어디로 가는지, 무얼 하기 위해 움직이는지 하나같이 눈코 뜰새 없이 분주한 생활이다. 외곽지에 가면 살기도 조용하고 집값이나 생활비도 훨씬 덜 들텐데도 뉴요커들은 마치 이곳이 내가 정든 고향처럼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떠날 줄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뉴욕이 수많은 인종들의 땀과 정취가 배어있는 곳이라는 특수성 때문이 아닐까. 뉴욕의 시민들은 미 전역에서 첫 번째로 비싼 렌트와 고물가를 감당하면서도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이곳을 사랑하고 있다. 언젠가 LA에서 뉴욕을 방문한 친구가 케네디공항에 내려
뉴요커들의 움직임을 보고 눈빛부터 다르다면서 이런 속에서 어떻게 무서워서 살 수 있느냐고 의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이런 속에선 하루도 편안히 못살겠다며 뉴요커들이 대단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뉴욕은 우선 세계의 경제 문화 예술의 중심지에다 특성에 걸맞게 발이 닿는 데마다 멋이 담긴 건축물과 다양한 먹거리, 세계적 유명브랜드 매장, 박물관, 거기다 휘황찬란한 맨하탄의 밤 문화는 세계 어딜 가도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특히 한인들이 생활수단으로 많이 이용하는 세븐 트레인과 연결된 맨하탄의 그랜드 센추럴 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역으로 특별한 디자인의 샹들리에와 거대한 아치창문, 지하에 몽땅 넣어진 철도 등은 여타 도시에서도 보기 힘들다. 이런 속에서 우리가 숨쉬는 건 천운이 아니면 무엇일까? 그런데 이 좋은 여건을 뒤로 하고 다른 도시로 이주하는 한인들이 많다는 건 좀 의아하다.

같은 돈이면 뉴욕보다 더 공간이 큰 주거지에다 물가도 훨씬 싸다는 이점 때문에 아틀랜타나 기후가 좋은 플로리다 등지로 떠난다고 한다. 그런데 가고 보니 그래도 뉴욕이 좋아 이곳을 떠났던 한인들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고 다시 오고 싶어도 정리가 잘 안 돼 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사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다. 없는 사람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이 도시를 떠나간다고 뭐 뾰족한 수가 있을까. 아무리 다녀보아도 뉴욕보다 더 살기 편하고 좋은 곳은 없다고 한다. 웬만하면 이곳에 정착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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