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부르고 싶은 이름, 아버지

2009-10-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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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떠나 보낸 지 벌써 4년이 됐습니다. 가을은 아버지를 더욱 생각나게 합니다. 언제나 기억이 희미해졌다가도 가을이 오는 것과 아버지의 그리움은 함께 오는 듯 합니다. 모든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마음이 허전한 계절입니다. 남겨주신 사랑이 너무 커서 그 빈자리가 더 크게만 느껴집니다. 차고 안쪽에는 아버지가 아끼시던 연장과 공구들이 먼지만 수북히 쌓여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4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아버지는 사진 속에서 웃고 계시는군요. 아이들은 그 사이 키가 훌쩍 컸는데 말입니다.

9년 전 기억나시죠? 승욱이 눈 수술을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준비 중에 아버지와 승욱이는 오후에 매일 산책을 하셨죠. 그때 집 옆으로 시각장애인 부부를 만나게 되고 서툰 영어로 도움을 요청하신 후에 우리에겐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손자가 앞을 보지 못합니다. 도와주세요’ 그 말의 위력을 전 오늘까지 느끼고 살고 있습니다. 그때 만약 아버지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지금 승욱이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겁니다.


자식사랑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셨던 아버지에 비해 전 너무 부족한 엄마입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주셨던 사랑의 반도 아이들에게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말만 앞서고 실천하지 못하는 미련한 엄마, 사랑을 먼저 주기보다 훈계를 앞서 주는 엄마, 부지런과는 거리가 먼 게으른 엄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바보 같은 엄마가 저입니다.

그런 반면 아버지를 생각하면 훌륭한 농사꾼 같습니다. 농사꾼이 열심히 밭을 가꾸고 씨를 뿌리고 풍부한 거름을 주어 비옥한 땅에 과수를 심었고 열심히 물을 주고 돌본 후 나무가 자라는 것은 보았지만 결국 열매를 보지 못하고 떠난 농사꾼 말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뒤를 이어서 나무를 잘 키워 열매를 맺겠습니다.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 말입니다. 그리고 아낌없이 열매를 나누며 살겠습니다.

이번 주말은 향기 짙은 가을 닮은 국화 한 다발 들고 아이들과 아버지를 만나러 가겠습니다. 가슴에 아버지가 내 아버지였다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할겁니다. 저희부부 역시도 이 땅을 떠난 뒤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가까이서 한번 불러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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