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 최초의 사대 문명이 강을 중심으로 존재해 왔음을 알고 있다. 중국의 황하문명, 인도의 갠지스 문명, 중동의 티그리스 문명 그리고 이집트의 나일문명이다. 그런데 그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황하문명'을 자랑해온 중국은 그것보다 최소한 천년 이상 빠른 요하 유역 고대문명의 등장에 놀라워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홍산(紅山)문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의 조상인 동이족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체 홍산문화란 무엇인가? 중국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 동북쪽에 철이 많아서 붉게 보이는 홍산(紅山)이 있다. 그저 풍경이 좋은 산으로만 여겨지던 이 붉은 바위산에 전 세계 고고학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06년의 일이었다. 이 산을 몽골사람들이 ‘우란하따(烏蘭哈達)’라고 부르는데 이 붉은 바위산 인근에서 학계를 놀라게 한 거대한 제단(壇)과 신전(廟) 그리고 적석총(塚) 등 거대한 후기 신석기 문화 유적들이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이 붉은 산 인근에서 발굴된 유적들은 예견된 상식을 일거에 깨어버렸으니 그것은 발굴한 현장이 하나의 국가체제를 완벽하게 갖춘 흔적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사학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홍산문화를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은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였다. 1906년 적봉 일대 지표조사를 하던 그가 많은 신석기 유적과 적석묘 등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세계적으로 아세아의 동북지방과 만주, 한반도 일대에서만 발견되는 무덤 형태였다. 그리하여 1955년 학계는 이를 ‘홍산문화’로 이름 붙였다. 그 이후 1982년 요녕성 뉴허량(牛河梁)에서도 같은 유적이 대거 발굴되자 각국 언론들은 ‘오천년 전 신비의 왕국’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지금부터 약 100년 지금은 중국 땅이 된 요녕성과 내몽골 그리고 하북성 경계의 연산(燕山)남북, 만리장성 일대에 널리 분포된 국가 체제를 완벽하게 갖춘 이 유적을 학계에서는 홍산문화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양심 있는 중국학자들은 그것이 바로 동방의 나라 즉 우리의 배달국 유물임을 확인하였고, 서양학자들도 인류시원의 문화임을 알고 고개를 숙였는데 정작 우리정부와 우리의 역사학계는 무덤덤하였다. 황하문명보다 앞선 기원전 3,500년경으로 추정되는 홍산문화는 통상 청동기 시대에나 출현 가능한 분업화가 이뤄진 국가형태를 띠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출토된 가면과 옥(玉) 장식 등에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대거 발견되어 국내 학자들 중 일부는 곰 토템을 지닌 웅족과 고조선 이전 한민족 원류 중 하나인 배달국과의 연계성을 주장하기도 한 것이다. 경천동지할 이 엄청난 사실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음을 보면서도 정작 우리는 자랑스러운 그 홍산문화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치사하고 야비하기 이를 데 없는 중국 정부는 중국고대사는 동이족의 역사라고 말하던 양심 있는 중국의 사학자는 다 내치고 동북공정을 조작하는 사이비 어용학자들을 동원하여 상고사의 특이한 점들은 모두 자기들의 역사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이다. 서북공정(신장·위구르)과 서남공정(티베트)은 그렇게 이루어졌고 그 모델을 동북공정에 복사한 것이고 그 완성이 바로 탐원공정(探源工程)이다. 탐원공정이란 웅녀상으로 상징되는 고조선문화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를 자기네 것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그러면서 그 상 앞에 동전을 던지며 발복을 기원하는 곳으로 전락시켰고 중화 삼조당을 세워 우리의 치우천황(배달국 제14대 천황)을 자기 조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발해·고구려·고조선을 차례로 자기네 역사로 만들어서 그 문화의 뿌리이자 인류시원문화인 홍산문화까지 모두가 자기네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 바로 탐원공정이다. 30년 전 중화문명의 시발점을 앙소문화에서 하모도문화로 바꿔 재설정한 중국은 뉴허량 유적 발견 이후 홍산문화를 ‘요하문명’이라 부르며 중화 3대 문명의 시발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홍산 문화는 중국 한족(漢族)의 문명과는 분명하게 다르며, 그 기원 역시 전혀 연관성을 갖지 않는 독창적인 것이다. 그것은 중국 문명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적석총 고분군이 수 십 개 산재해 있는데다 묘에서는 곰의 턱뼈가 발견되었다. 적석총은 요동반도와 한반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우리 민족의 장묘 형식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구별이 되는 것이며 곰의 턱뼈는 곰을 신성시하는 우리 민족의 사상이 담긴 증거로 웅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사료되는 것이다.
홍산문화는 동이족의 문화다. 그리고 그 홍산문화는 중국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문화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문명의 이동로가 중국에서 한반도로 그리고 한반도에서 왜로 건너간 것이 아니라 동이족의 홍산문화가 한족(漢族)문화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중국이 지난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소개하기 시작한 홍산문화의 원류를 둘러싸고 한·중 학자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학학술원(원장 김호일)은 수년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동북아 평화정착을 위한 제3회 홍산문화 한·중 국제학술회의’를 열고 홍산문화에 대한 양국 학자들의 인식차를 확인하였다.
‘홍산문화를 통해 본 동북아 지역의 민족기원’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회의에선 중국 측에서 타라아(塔拉) 내몽골(內蒙古)자치구 고고학연구소장이 우하량(牛河梁) 유적의 발견과 고고학적 가치에 대해, 텐광린(田廣林) 랴오닝(遼寧)사범대 역사학원장이 홍산문화와 중국의 용신에 대한 숭배를, 쉐즈차앙(薛志强) 다롄(大連)대 교수가 흥륭와(興隆窪)문화와 홍산문명의 관계를 설명했
다. 한국측에선 김 원장이 홍산문화의 옥기(玉器)와 적석총, 비파형동검 등을 예로 들어 동이문화권임을 밝혔다. 또 권태원 교수가 중국 동북지방과 고대 한민족의 동이족의 문화권 문제라는 제목의 발표문을 통해 “중국 동북지방인 만주대평원에서 발원하고 태양을 숭배하여 큰 규모의 석총문화권을 형성한 고대 한민족은 고조선 및 부여국을 비롯,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및 고대일본에 이르기까지 동일계 민족에 의해 동일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채혁교수는 ‘순록유목과 홍산문화’란 발표문에서 순록유목사적 시각에서 홍산문화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교수는 “무엇보다도 홍산문화 하가점(夏家店) 하층문화가 몽골 스텝을 기지로 목축과 농업을 아우르는 성격을 띠는 유목제국의 소산이라면 필연적으로 중·신석기 시대 이후에 바이칼호 북극해권을 토대로 이루어진 순록유목일 수밖에 없다”면서 “홍산 기층문화는 조(朝)족과 선(鮮)족이 주도하는 순록유목문화”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유목개념이 없이 유목사 문헌사료를 읽는 데 본질적으로 문제가 있다”면서 “농
경 사회사와 똑같이 툰드라 스텝지대에서 조차 토기나 도자기, 또는 청동기 철기가 역사발전을 재는 절대 잣대로 돼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는데 유목 생업권에선 토기나 도자기보다 목기나 가죽그릇 또는 뼈나 뿔 그릇이 더 유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학학술원 측은 “중국은 홍산문화 유적 발굴 이후 고구려와 그 이전의 우리 상고사를 송두리째 중국 역사로 끌어안고 있다”면서 “폭넓게 요하문명이라 명명하고 있는 홍산문화의 실상을 밝히는 일은 한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일이자 한·중 양국의 역사 갈등을 해소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요약하면 홍산문화는 중국 신석기시대 후기(약 칠천에서 팔천년 전)의 문화로 주로 랴오닝(遼寧)성 서부 일대에 분포하는데 홍산문화는 경제적인 면에서는 농업과 목축업의 중간지대에 속한다. 갈아 만든 돌보습과 돌칼뿐만 아니라 화살촉이나 깎는 도구, 가는 도구, 자르는 도구 등의 잔석기도 있어 목축과 수렵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요서지역 홍산문화는 고조선 문화권이며 홍산문화는 단군조선 건국의 토대가 되는 문화였음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최고(最古)의 문명인 것이다.
(NJ Fort Lee 한사랑교회 담임목사)
홍산문화의 적석총 유적서 돌널 무덤이 발견되었다. 우하량 제2지점 적석총 유적 전경. 한반도에서 흔히 볼수 있는 청동기시대의 석상식 석관묘가 있으며, 지(之) 자형 빗살무늬토기도 있다.
고조선과 고구려, 부여 등이 있는 한국 상고사 지도. 환국에서 나온 환인씨(桓因氏)의 후손인 왕검(王儉)이 환국의 홍산문명을 계승하여 하가점에서 고조선(古朝鮮)을 건국하고 우하량(牛河梁)지역을 중심으로 대륙의 요녕과 하북, 산동, 만주, 한반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삼한으로 분리하여 통치한다. 마한(馬韓)은 산동지역이며 진한(辰韓)은 만주지역이고 번한(番韓)은 하북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