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펀치! 펀치!

2009-09-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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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승욱이 학교를 방문했다. 보청기 배터리를 주러 잠시 들렀는데 학교로 들어가는 길에 승욱이 스피치 선생님과 마주치게 되었다. 배가 남산만한 것이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 선생님이다. “어! 이제 곧 아기를 낳나봐요?” “이달 말에 낳아요” “승욱이 가르치면서 안 힘들었어요?” “어휴, 가끔 배를 쳐서 떨어져서 수업을 했어요” “승욱이가 배를 쳤어요?” “심하게 그러진 않고요, 가끔…” “죄송해요. 누구를 때리는 아이는 아닌데…”

이게 뭔 소린가? 배부른 선생님의 배를 치다니? 더 심하게 펀치를 날리면 연락을 달라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참 의문이다. 보이지 않는 애가 어떻게 펀치를 날리는지. 눈으로 보기 전엔 믿기가 힘들었다.

토요일 AVT 스피치 시간에 브릿짓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이 다 되서 일어나는데 승욱이에게 브릿짓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라고 했더니 냅다 선생님의 배에다가 펀치를 날린다. “어 이게 무슨짓?” 브릿짓은 웃으면서 “요즘 인사가 펀치예요. 기분 좋아도 펀치를 하려고 하고, 인사를 하라고 해도 그렇고, 하하하” “이거 어디서 배운 거죠? 어휴, 못하게 말려주세요. 나쁜 거라고 NO라고 말해주세요”


고민을 안고 집으로 승욱이를 데리고 왔다. 승욱이 간식을 먹이고 잠깐 이층에 승욱이 편한 옷을 가지러 올라갔다가 아래층으로 내려오는데 거실에서 재미있어 어쩔줄 모르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친정엄마와 승욱이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소파에 앉아 웃고 있다. “승욱, 훅훅 펀치, 펀치! 훅훅 펀치 펀치!” 친정엄마와 승욱이가 권투하는 시늉을 하면서 앉아 있다. 제법 권투하는 모습을 갖추고 할머니의 배를 치고 또 엄마는 승욱이의 배를 툭툭 친다.

“엄마, 엄마였어? 아, 나 못살아~” “왜?” “애한테 펀치를 가르치면 어떡해? 애가 선생님들한테 펀치를 날리잖아” “그래? 이 조막만한 손으로 펀치를 해봤자 뭐가 아프다고 그래?” “아픈 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치는 게 문제지” 친정엄마는 승욱이에게 “승욱아, 엄마가 이제 펀치하지 말래 그만해. 알았지?” “애가 그만 하라고 그만해? 지금 재밌어서 난리인데? 아, 몰라~”
친정엄마는 승욱이가 오는 매주 주말 아이와 펀치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이다. 승욱이가 날리는 펀치의 의미는 너무 재밌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내가 너를 잘 안다. 뭐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하고 펀치를 날리는 것이다. 아, 앞으로 이 버릇을 어떻게 잡아주나.

이젠 나에게도 기분이 좋으면 한방씩 펀치를 한다. 앞을 못 보는 녀석이 얼마나 정확하게 펀치를 때리는지 그 동안 얼마나 연습한 거야? 그 동안 펀치를 날린 것만큼 NO라는 소리를 해야 할 것 같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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