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태평양 넘나든 ‘시어머니 레서피’ 만인의 요리법으로

2009-09-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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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 저자 - 샌호제 거주 장선용씨

참 다복도 하다. 시어머니는 요리하고 큰며느리는 정갈하게 상 차려내 책 한 권을 엮었다. 여기에 막내며느리도 가세, 시어머니의 손때 묻은 레서피를 영문으로 번역해 미국에서도 보기 드문 영문 한식 요리책 한 권을 탄생시켰다.

바로 지난 5월 출간된 ‘A Korean Mother’s Cooking Notes’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지만 이 책의 저자 장선용(69)씨 앞에서 이 오래된 명제는 꼬리를 내려야 할 듯 싶다.

비록 아들만 덩그마니 둘이지만, 어느새 20여년을 함께 해온 며느리 둘이 잘 키운 딸 열 안 부럽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고부간 유명세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메일도 없던 20여년 전, 이제 막 초보주부에 입문한 큰며느리 최정문씨(45)를 시작으로 3년 뒤 시집 온 둘째 며느리 조수진(42)씨까지 모두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태평양 건너 필담으로 주고받은 레서피들를 묶어 낸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이 세간에 화제를 낳으면서 이 집안 내력은 이미 담을 넘어섰다.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 모두 이대 동문 선후배라는 사실에, 또 안사돈들끼리는 이화여고 동기동창이며 여기에 덤으로 둘째 안사돈과는 대학 동기동창이라는 보기 드문 학연까지 알려지면서 이들 고부는 당시 경이적인 시청률을 자랑했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사돈지간에까지 비견되면서 요리책과는 별개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누가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 했는가. ‘거기서 거기’의 바로 그 틈새, 그 깊고 깊은 그 행간 사이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을. 그리하여 이 특별한 고부가 보여준 의기투합은 단순히 책을 함께 만든 동지애 이상의 끈끈한 연대가 애잔히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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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시집 온 며느리와 태평양 건너 편지로 주고받은 레서피를 묶어 1993년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을 히트시킨 베스트셀러 저자 장선용(왼쪽)씨와 큰며느리 최정문씨가 샌호제 장씨의 서재에서 다정하게 웃으며 지난 5월 출간한 영문 요리책을 살펴보고 있다.

미국생활 자녀 사랑 절절이
막내 며느리 ‘영문판’펴내


#한 권의 요리책, 대한민국 흔들다

1989년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있는 샌호제로 건너온 큰며느리 정문씨 역시 세상 모든 새댁들이 그렇듯 세끼 밥 해 먹는 일이 가장 큰 곤욕일 수밖에. 궁여지책 끝 친정 엄마에게 전화라도 할라치면 ‘요리하면 안사돈’이라며 극구 시어머니에게 떠다 미는 통에 김치찌개며 된장찌개, 불고기 등속의 한식요리 기초를 시어머니에게 익혔다.

“그때 어디 이메일이란 게 있었나요. 안부 편지에 꼭 요리에 대해 물어봤고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편지에 요리법을 빼곡하게 적어 보내주셨죠. 물론 급하면 전화로도 물어보고요.(웃음)”

그렇게 두 고부는 정문씨가 시집 온 해부터 꼬박 3년을 필담으로 레서피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컴퓨터에 기록한 레서피가 거의 책 한 권 분량에 이르자 큰며느리는 물론 91년 결혼한 막내며느리인 수진씨에게도 주기 위해 이를 프린트해서 묶었다. 그러다 예전부터 그 장롱 속 시크릿 레서피 좀 공개하라는 지인들 성화에 몇 부를 더 만들었는데 그 사연이 어찌어찌 흘러 본국 한국일보에까지 소개되면서 이 따뜻한, 그러면서도 아주 특별한 요리책을 출간하겠다는 출판사들의 러브콜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그러면서 평범한 이 중년의 전업주부는 하루아침에 대한민국 유명 인사가 돼 버렸다.

이렇게 출판경쟁이 벌어지자 아예 이대 동문들 몇몇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어 모교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고 출판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베스트셀러 전업작가도 아닌 그녀의 이 소박한 요리책은 가난한 대학출판사에 10만부 판매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안겨 줬기 때문이다.

그 뒤 올해까지 꼬박 16년간 그녀의 책 4권 중 3권이 모두 이대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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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용씨가 16년간 펴낸 요리책. - 왼쪽부터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 증보판(1996), 영문판‘A Korean Mother’s Cooking Notes’(1997), ‘음식 끝에 정 나지요’(2002)와 ‘A Korean Mother’s Cooking Notes’증보판(2009).

결혼하자마자 미국에서
신접살림을 차리게 된
너희들에게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해서 틈틈히
적어 본 나의 음식 만드는
방법이 참고 됐으면…

#요리책도 문학일 수 있음을 보여주다

이처럼 소박한 실용서 한 권이 대한민국을 흔들게 된 이유는 이 책이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단한 부엌살림에 지친 이 시대 모든 아줌마들에게 요리법이 아닌 감동을 배달했기 때문이다.

책의 서문 격에 해당하는 그녀가 두 며느리들에게 쓴 편지는 결혼한 젊은 여성들이라면, 그것도 친정과 떨어져 이역만리 미국에 사는 주부라면 편지의 행간 행간을 건너며 가슴 한 구석이 짠해온다.

‘결혼하자마자 미국에서 신접살림을 차리게 된 너희들에게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해서 틈틈이 적어 본 나의 음식 만드는 방법이 참고가 됐으면 좋겠다. 단 시어머니가 이렇게 하셨다니까 나도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공연한 스트레스는 받지 않기 바란다. 딸이 없는 나로서는 딸 둘을 얻은 것 같은 흐뭇한 마음으로 너희를 생각하고 써 본 것이니까. 다 아는 얘기, 이미 아는 방법 같은 것은 노파심이라고 생각하고 보아주기 바란다.’

그런가 하면 당시 말 그대로 며느리를 봐 할머니인 한 여성이 썼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과학적이고 정확한 계량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 연배 어머니들이 ‘손맛’이란 미명(?)아래 어림짐작 계량하던 게 전부이던 그 시절, 그는 책에 센티미터는 그렇다 쳐도 어떤 야채 썰기는 밀리미터를 이용할 만큼 정확하다. 심지어 나물에 대해서 쓰면서 ‘여기에는 계량을 양재기로 썼는데 한 양재기는 대강 빡 갈라서 4컵 정도가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할 정도다.

이처럼 그녀의 글이 감칠맛 나는 이유는 그녀가 고교 시절 백일장에서 상 꽤나 휩쓸었던 문학소녀였고 국문과 출신에 학보사 기자까지 글쓰는 걸로 청춘을 보낸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 싶다.


한국서도 베스트셀러로
고부-안사돈 이대출신 화제
깔끔한 레서피·맛깔진 문체
에피소드 곁들여 미소 짓게
샌호제 지근서 옹기종기
메주 쑤고 고추장도 만들어

#엄마, 밥상에 목숨 걸다

그녀가 요리를 시작하게 된 동기. 바로 두 아들 때문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IT 기업에서 일한 남편 덕분에 미국과 인도네시아, 필리핀 세부 등지를 돌아다니며 살았는데 세부에선 국제학교가 없어 부득이하게 아들 둘을 바로 위의 언니가 있는 일리노이주로 유학 보내야 했다.

“한참 예민한 사춘기 시절인 틴에이저들을 떨어져 보낸다는 게 쉽지 않았죠. 그래서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집에 오기 며칠 전부터 무얼 해서 먹일까, 뭘 만들어 주면 좋아할까 골머리를 싸맸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미국에 있을 학기 중엔 열심히 방학을 대비해 음식을 연구하고 새로운 레서피를 개발하고 그랬죠. 아마 제 요리의 대부분은 그때 이뤄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녀는 인도네시아건 필리핀에서건 된장과 고추장도 미국 언니에게 공수 받고 심지어 젓갈도 직접 만들어 먹고 쌀 사다 떡까지 빚는 놀라운 정성을 발휘한다. 음식을 하면서 ‘외국이라 재료가 마땅치 않으니까’라는 핑계는 그녀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그녀의 요리연구는 다시 남편이 한국 지사장으로 발령 받아 1983년 서울에 오면서 보다 더 탄력을 받게 된다. 그녀는 한국 궁중요리의 대가 강인희 선생에게 본격적으로 정통 한식요리를 사사하기에 이르고 그렇게 10년 세월을 함께 하면서 강 교수의 수제자가 됐다.


#2009년 9월 그녀의 식탁은

장씨는 2003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현재 두 아들이 거주하는 샌프란시스코 인근 프레몬트 시티에 거주하고 있다. 두 아들 내외 역시 그녀의 집에서 모두 차로 5분 거리 안팎이어서 어찌 보면 따로 살다 뿐이지 대가족 생활에 다름없다.
다들 부엌 문 닫고 싶은 마음이 굴뚝일 연배임에도 장씨는 하루 두 끼는 손수 밥상을 차리고, 한 달이면 수 차례 수십명 손님은 거뜬히 치른다. 어디 이뿐인가. 여전히 그녀는 텃밭에서 깻잎이며 각종 야채를 길러 유기농 식재료로 쓰고 고추장 된장 간장을 미국 땅에서 직접 고추 말리고 메주 쒀 만들고 있으니 요즘 말로 ‘웰빙 밥상’이 따로 없다.

“어제 성당에서 10여명이 다녀가셨죠. 메뉴는 냉면 정식이었는데 사람들이 흔히 냉면 정식하면 냉면 한 그릇에 밑반찬 몇 가지가 다 인줄 아는데 정통 냉면 정식에 냉면 외에도 빈대떡과 갈비, 편육, 겨자채, 그리고 후식으로 떡을 내야 해요. 물론 떡도 제가 만듭니다. 힘들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젠 이력이 났죠. 요령도 생기고. 며칠 전부터 메뉴 짜고 슬슬 장보고 하면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맛있게 먹는 사람들 보면 오히려 제가 더 행복한 걸요.”

그녀의 이 소박하지만 반짝이는 식탁에 앉은 이들이라면 정성 들여 지은 밥 한 공기와 국 한 그릇이 얼마나 큰 감동과 위안을 건네는지 알게 된다. 다들 눈치챘겠지만 아마도 그녀가 세상 며느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던 건 밥하는 기술이 아니라 정성껏 지은 밥이 발휘하는 놀라운 위로의 힘이었을 터. 그리하여 오늘도 그녀는 쉴 틈 없이 분주하게 행복을 요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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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 내외, 손자들과 함께 한 크루즈 여행에서 찍은 가족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부군 이영일씨, 장남 희승·차남 희창씨, 둘째 며느리 조수진씨, 장선용씨, 큰며느리 최정문씨와 손녀딸 혜준·연준양. 앞줄은 차남 희창씨의 3남매. 왼쪽부터 태준, 세준, 경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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