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승욱 엄마 뿔났다

2009-09-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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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하게 창 밖을 내려다 본지 두 시간이 지나고 있다. ‘오기만 해봐라’

메디칼센터 5층은 두 달에 한 번 꼴로 찾는 곳이다. 승욱이 청력검사와 임플란트의 채널을 맞추기 위해서다. 그런데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5년 만에 새로운 임플란트 프로세서를 교체하는 날이다. 승욱이 기숙사에 지난주에 연락을 해놓고 담당 복지사에게도 늦지 않기를 당부했다. 그 당부가 오늘은 아예 나타나지도 않는 사태까지 왔다. 매번 10분 20분 늦는 건 기본이다. 예약시간에 맞춰 온 것이 10번 중에 한번 뿐이니 매번 병원 예약 때마다 청력사인 지나에게 미안해 하던 참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예 예약날짜와 시간까지 기숙사에서 잊어버리고 아침 8시에 병원에 도착해야 하는 아이가 9시가 넘어도 오질 않는다. 기숙사에 전화를 걸어 담당자를 찾으니 자리에 없다. 뒤늦게 보고를 받은 디렉터는 함께 데리고 갈 사람을 찾고 있다고 무조건 기다리란다.


정확히 11시25분에 엘리베이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승욱이가 병원에 도착했다. 화로 달궈진 얼굴과 눈에서 광선이 나도 모르게 나간다. ‘찌릿’하니 승욱이 담당복지사의 얼굴을 째려보고 있다. “예약이 오늘 몇 시였는지 알아요? 오전 8시였어요. 못 오면 못 온다고 하지 방금 출발했다는 시간이 2시간 전이었다고요!” 나에게 이런 표독스러운 데가 있다니 새로운 발견이다. “어떻게 매번 늦고 오늘은 아예 오지도 않고 전화도 안 받고 사람을 이렇게 화나게 할 수 있어요? 오늘 중요한 날이라고 말했잖아요!” 어허, 우리 복지사도 움찔했는지 찍소리 않고 승욱이 옷매무새만 다듬고 있다.

코에서 뜨거운 바람이 씩씩 나고 입에서는 화난 말투가 거침없이 나가고 있다. 회사 출근시간도 덩달아 늦어져서 이만저만 뿔난 것이 아니다. 승욱이가 내 목소리를 듣고 엄마가 있는 것을 확인하더니 헤헤헤 웃는다.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데 승욱이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웃으니 마음이 참 이상해진다. ‘엄마, 나 여기 왔잖아. 그리고 지나 선생님이 프로세서 새것으로 바꿔 주신다잖아. 엄마 화풀어’ 승욱이가 말할 줄 알면 그렇게 말해줬겠지? 아무 것도 모르고 웃고 있는 승욱이를 보니 서서히 화가 풀리기 시작했다.

다음에도 또 늦기만 해봐라. 쳐들어간다. 기숙사로.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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