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 롱롱 부츠

2009-09-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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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니까 확실히 튀네”

아무리 매 시즌 새로운 유행이 등장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유행라는 게 아주 ‘맨땅에 헤딩’은 아니다. 예컨대 봄이면 핑크나 그린 등 화사한 파스텔 톤 미니 드레스 안에서 새로운 유행이 제시되고 가을이면 어김없이 소재와 컬러만이 조금씩 다른 트렌치 코트가 우리 앞에 등장한다. 겨울 트렌드는 이보다 더 심플하다. 코트와 부츠를 빼놓고 겨울 패션을 논할 수 있었던가. 그런데 이 코트와 부츠의 유행 경향이란 게 사실 비슷한 속성을 가졌다. 해마다 길이가 길어졌다 짧아졌다를 반복하는 속에서 약간의 소재의 변주정도만이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매년 겨울이면 코트와 부츠의 유행 경향을 제시하긴 하지만 막상 지난해와 비교해 보면 경천동지할 만한 차이는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시즌 부츠를 논할 때는 조금 이야기가 틀려진다. 이미 이번 시즌 컬렉션을 면밀히 살펴 본 이들이라면, 아니 이렇게 멀리까지 잡을 필요도 없이 최근 백화점 구두 매장을 주마간산 격이라도 휙 둘러 본 이들이라면 이번 시즌 부츠 트렌드가 그 어느 때보다 파격적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름하여 ‘롱롱’ 부츠다.

이번 시즌 로달테(Rodalte)가 레깅즈인지 부츠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길고 긴 부츠를 캣워크에서 선보인 이래 이번 시즌 대부분의 슈 브랜드에선 쳐다보고 있노라면 지루할 정도로 길고 긴 부츠를 다들 한 두 디자인씩은 내놓았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그리 큰 변화 없는 이 조용한 패션의 정글에서, 그래서 가뜩이나 지갑도 얇은데 눈 딱 감고 이번 시즌 딱 하나만 장만해야 한다면 바로 이 롱롱 부츠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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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컬렉션에서 의상보다 더 주목받았던 로달테의 그린 컬러 롱롱 부츠. 이번 시즌엔 이처럼 허벅지를 덮는 길고도 긴 부츠가 유행할 전망이다. <사진=바니스 뉴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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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da

마치 신발 달린 레깅즈 입은듯
대부분 허벅지 중간까지 올라와
블랙 컬러의 가죽 소재가 대세

■ 유행경향은


이번 시즌 이 길고 긴 부츠의 유행경향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신발 달린 스키니 진이나 레깅즈를 상상하면 될 듯 싶다. 지난해인가 언제부터 가죽 또는 인조 가죽 소재 레깅즈가 유행한 적이 있는데 그런 레깅즈에 부티(bootie)가 달려 있다고 보면 딱 좋을 만큼 스키니하면서도 길고 긴 부츠가 이번 시즌 유행의 정점에 서 있다.

그래서 미니 스커트와 함께 매치하면 레깅즈를 입은 것인지 부츠를 신은 것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긴 하다. 경기는 여전히 암울한 게 현실일진대 이렇게 보통 시즌보다 가죽이 2배로 들어 가격 역시 2배 이상 뛰어 오른 롱 부츠가 유행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서 혹자는 그렇게 허벅지를 다 덮을 만큼이라면 발 사이즈 뿐 아니라 허벅지 사이즈까지 따로 분류해서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진담 섞인 농담을 하기도 한다.

소재는 부츠가 다 그렇듯 가죽과 스웨이드 두 가지인데 그래도 가죽 스타킹을 신은 듯 섹시하면서도 딱 떨어지는 느낌을 주기엔 역시 가죽 소재가 대세다.
굽은 4인치 가량의 킬 힐에서부터 아예 굽이 없는 운동화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물론 이 중간 높이의 굽이란 없다. 굽이 없든지 아니면 아예 높은 게 이번 시즌 롱롱 부츠의 트렌드니까.

디자인은 대부분 허벅지 중간까지 오는 길이가 많은데 ‘오버 더 니’(over the knee) 타이즈처럼 허벅지에 딱 달라붙는 디자인도 있지만 대부분 허벅지 쪽으로 갈수록 입구가 커져, 그래도 신으면 레깅즈가 아닌 부츠처럼 보이긴 한다. 그러나 컬러에서는 예외 없이 블랙이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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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art Weitzman / Costume National / Brian Atwood /Yves Saint Lau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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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롱롱 부츠는 가죽 스타킹을 신은 듯 다리에 달라붙는 슬림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사진=바니스 뉴욕 제공>

‘이브 생 로랑’‘프라다’빼어난 맵시
명품부터 캐주얼까지 선택 폭 다양

■ 어떤 브랜드, 어떻게 샤핑할까

신발을 만드는 제조사라면 디자이너 브랜드에서부터 캐주얼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롱롱 부츠 한두 디자인 내놓지 않은 곳이 없어 맘만 먹으면 예산 안에서 샤핑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미 앞서도 설명했듯이 이게 그냥 부츠도 아닌 일반 부츠보다 가죽이 적어도 1.5배는 더 들다 보니 가격이 결코 만만치 않다. 그렇지 않아도 겨울에 부츠 하나 장만하려면 큰 맘 먹고 1년 전부터 예산 계획을 세워야 할 판인데 롱롱 부츠는 더 이상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번 시즌 부츠 박스에 표기돼 있는 가격표에 상관없이 가장 아름다운 롱롱 부츠를 내놓은 디자이너는 단연코 이브 생 로랑.

이미 몇 시즌 전부터 펌프스는 물론 부티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엣지’있는 디자인을 선보여 ‘슈 홀릭’들을 숨막히게 했던 이 브랜드는 이번 시즌에도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름다우면서도 시크한 롱롱 부츠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물론 이브 생 로랑 외에도 슈 홀릭들의 영원한 우상 지미 추와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역시 기본을 충실히 지킨 아름다운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프라다나 이브 생 로랑 등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는 2,000달러 이상을 호가하는 게 대부분이며 이번 시즌 잇 부츠로 통하는 로달테는 자그마치 부츠 하나에 3,000달러를 넘는다. 또 클로이나 크리스찬 디올도 기본적으로 1,000달러 이상 ‘지를’ 계획을 세워야 이 롱롱 부츠를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즌 가장 합리적인 가격 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을 선보인 브랜드는 ‘스튜어트 웨이츠먼’(Stuart Weitzman). 이미 지난 겨울 린지 로한 등 할리웃 스타들이 열광한 ‘5050’부츠라는, 지금처럼 과장된 길이는 아니었지만 ‘오버 더 니’ 부츠를 선보인 선견지명이 있었던 이 브랜드는 이번 시즌 다양한 굽 높이별로, 소재별로 다양한 디자인의 롱롱 부츠를 선보였다. 물론 가격은 럭서리 브랜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600~700달러 선으로 결코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이보다 편안하면서도 그런지한 느낌을 주고 싶다면 커스튬 내셔널(Costume National)의 롱롱 부츠도 무난한 듯 엣지있게 신을 수 있을 듯.

만약 클래식하면서도 각선미에 자신 있는 이들이라면 이번 시즌 가장 길고 날씬한 디자인을 선보인 프라다와 브라이언 엣우드(Brian Atwood)가 제격이다.
그러나 ‘어차피 튀는 아이템, 확실하게 튀고 싶은’ 이들이라면 당연하게도,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지난 캣워크에서 트렌드 세터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로달테의 세이지 컬러 롱롱 부츠를 추천한다. 바니스 뉴욕은 이 부츠를 우주인과 함께 우주선에서 내리는 여자 모델에게 입힌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확실히 이번 시즌 가장 튀는 아이템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이번 시즌 이 롱롱 부츠를 손에 넣기 위해서 이처럼 중고차 한 대 값의 액수를 지불할 필요는 없다. 캐주얼 브랜드와 디자이너 브랜드의 세컨 브랜드들에선 300~500달러 내외에서 샤핑 할 수 있어 이번 주말 윈도 샤핑에 나서 볼 만하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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