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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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람선 지도신부가 된 경위

2009-09-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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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영 신부의 유람선 지도신부 이야기

나는 샌프란시스코 대교구 한인 가톨릭 공동체의 신부로 1986년 5월에 부임했다. 신자 자질 향상이 급속도로 전개되고 성당 건물의 밖과 안은 새롭게 변모되면서 교구 내 한인천주교회의 입지가 널리 알려지고 한국인의 신앙이 교구 내 높이 평가 받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신자재교육과 성당 안 밖의 보수를 통해 가장 큰 파급효과는 공동체의 일치였다. 발전하는 교회모습을 지켜본 교구는 1988년 1월1일자로 한인 신자공동체를 Mission(공소)에서 본당(Parish)로 승격시켜 한인성당 사제를 교회법상 본당신부로 공식 발표했다. 이는 한국인의 자랑이며 한국 가톨릭의 영광이었다.

1989년 10월 17일 오후 5시4분 강도 7.1의 강진이 샌프란시스코 Bay Area를 강타했다. 성당 건물이 상당히 망가지고 균열이 생겼다. 성당천장에 균열로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지기에 대단히 위험하다고 판단 교구로부터 한 달 동안 성당 문을 닫으라는 권고를 받았다. 교구조사단에 의해 천장에 거물을 친 후 성당에서 미사봉헌이 다시 허락 되었다. 당시 지진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30년 이내에 강진이 Bay Area를 다시 강타한다고 한다. 강진이 생기면 성당건물은 물론 미사도중 인명피해도 막중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대주교는 교구 산하 모든 성당건물에 대한 안전도 조사를 지시했다. 성당건물을 조사하는 동시에 본당 관할구역도 재조정하기위해 대주교가 임명한 사제들과 평신도들로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러한 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하자 나는 즉시 한인전용의 성당이 절대로 필요 하다는 당위성을 조목조목 열거한 나의 편지을 대주교와 대주교로부터 임명받은 재조정위원회 위원장 Msgr.Armstrong신부에게 보냈다.

샌프란시스코 교구에서 사목하는 동안 교구부터 인정과 신임을 받은 좋은 관계를 최대로 활용하고 교구 사제가 된 이점을 100% 살릴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조정작업위원들을 공석 또는 사석에서 만나 단독성당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득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대했다. 3년간의 본당 구역 재조정작업을 통해 성 십자가 한인성당을 포함 교구 내 7개 성당이 폐쇄하기로 결정이 난 반면 성 마이클 성당이 새로이 한인신자만을 위한 성당으로 결정이 났다. 주님이 하시는 일은 놀랍고 놀라운 일이다. 목조 건물로 아름다운 성 마이클 성당을 한인단독성당으로 새로이 결정을 내리던 그 날 그 순간은 나의 사제생활 중 잊을 수없는 또 하나의 최고보람과 기쁨이었다. 한인성당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니 나의 마음은 하늘을 나르듯 기뻤다. 샌프란시스코 대교구 소속 사제로서 교구가 요구하면 무엇이든 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 베푼 막중한 은혜를 갚는 길이라 생각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적당한 시기에 미국사목의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대주교는 영어를 배울 겸 1년간 휴가를 나에게 주었다. 1994년 10월 1일자로 한인성당을 미련없이 떠난 나는 교구주선으로 휴가기간동안 영어와
Computer을 Marine County College에서 교구부담으로 6개월간 수업했다. 1996년 1월1일자로 교구 내 가장 모범성당인 St.Pius 성당에 보좌신부로 나는 발령이 났는데 당시 주임신부가 공교롭게도 성당을 얻는데 많은 도움을 준 조정위원회 위원장 Msgr.Armstrong 신부였다.

65세가 되면 은퇴를 하겠다는 생각을 한 나는 은퇴 1년 전(2002) 대주교와 은퇴 담당 주교에게 나의 뜻을 서신으로 전했다. 결국 나의 뜻을 받아들여 2003년 1월 1일자로 교구로부터 정식은퇴를 했고 은퇴 후 교구 내에 좋은 환경을 갖춘 St. Mateo시에 12여명의 교구 은퇴 사제가 사는 Serra Clergy House에 내가 살도록 교구가 마련해주었다. 교구가 베푼 막중한 은혜와 미국으로부터 나의 조국이 받은 잊을 수 없는 은혜를 갚는 길은 사제로서 열심이 사는 길이다. 한두 번 해외로 사목차 여행하는 일 외는 은둔자와 같이 기도와 글을 쓰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데 은퇴도 했기에 유람선 지도신부를 해 보면 어떨까 하는 교구 친구신부들의 권유가 유람선 지도신부가 된 동기였다. 유람선의 지도신부가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알게 된 나는 교구장의 추천편지와 까다로운 절차를 거처 유람선 지도신부 자격증(ID)을 2006년 초 텍사스주 바다의 사도 직 본부로부터 받았다. 유람선 지도신부가 유람선에서 하는 일은 매일미사를 봉헌 하는 것이 첫째이고 그리고 영적상담 때로는 고백성사 등이다.

지난 2월 2일 e-mail을 열어 보니 Holland America Line 소속인 Westerdam 유람선을 비롯해서 같은 회사의 다른 유람선들이 미국 시애틀에서 2009년 7월에서 9월까지 매일 알래스카(Alaska)로 출항하는 유람선 스케줄이 소개된 전자편지가 들어있다. 나의 사정에 알맞는 유람선 스케줄을 선택해서 유람사목의 본부가 있는 텍사스로 나의 전자편지를 보냈다. 전자편지 발송 3일째 되는 날에 나의 신청이 채택되었다는 답신이 텍사스 유람선 사목본부로부
터 왔다. 나는 2005년 말부터 유람선 지도신부로 정식 등록이 되어있기에 여러 유람선 회사로부터 유람선 지도신부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텍사스에 있는 바다의 사도 직 총 본부로부터 매일 오다시피 한다.

1년에 몇 차례나 유람선 지도신부로서 유람여행을 할 수도 있는데 은퇴는 했지만 그렇게 다닐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기에 1년에 한 차례 또는 2차례정도는 유람선 사목을 해 왔다.알래스카 산야는 여전히 눈으로 덮여 있는 빙산이지만 겨울보다는 여름이 훨씬 덜 추우리라 생각하고 여름철에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 했다. 알래스카로 가는 유람선의 유람선 지도신부로서는 이번이 3번째로 유람선을 타게 되는 셈이다. 첫 번째는 2007년 6월17일(일)- 7월 1일(일)까지 2주일간의 일정이었으며 당시 유람선도 Holland America Line 에 속한 Ms Statedendam 이란 유람선이었다. 캐나다 뱅쿠버에서 출발 알래스카로 가는 유람선이었고 2주 후에 다시 뱅쿠버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2번째는 2008년 9
월 7일(일)-14일(일)까지 1주 코스의 알래스카행 유람선이 시애틀에서 출발했다. 이때도 Holland America Line 회사에 속한 16척의 유람선들 중 Westerdam 이란 유람선을 타고 시애틀에서 출발했다.

이상 2번의 유람선을 타기 위해 나는 나의 차를 몰고 한 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카나다 뱅쿠버까지(912miles:1459.2km) 갔다 왔으며 2번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애틀까지(802miles:1283.2km) 갔다 왔다. 나는 운전을 직접 하면서 차를 몰고 장거리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장거리 운전을 좋아 하는
이유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산과 들, 푸른 나무들, 메마른 사막, 강, 호수, 광활한 초원과 농토 등등 아름다운 자연의 볼거리를 운전하면서 즐긴다. 둘째는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들은 창조주 하느님의 위대한 작품임에 틀림없기에 이러한 자연을 통해 하느님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면서 주님을 더 가깝게 체험하고 주님과의 대화는 나에게 귀중한 묵상이 되는 동시에 주
님과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지는 좋은 계기가 된다. 셋째는 좁은 공간인 나의 차안에 오로지 주님만을 뫼시고 함께 운전하면서 주고받는 끝없는 대화는 나를 한없이 즐겁게 한다.

넷째는 고속 운전을 즐기는 것이다. 끝없이 확 트인 고속도로를 나의 차로 운전하는 즐거움은 역시 크다. 홀로 차를 몰고 장거리를 여행할 때 차안에서 하루 평균 9시간 이상을 보내야 한다. 자칫하면 외롭고 지루하고 피곤하며 또한 뜻하지 않은 위험이 나를 두렵게 또는 겁나게 하는 것 등등 나의 정신을 지치게 하는 부정적인 요인들을 쉽고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님과의 끝없는 대화다. 대화로서 그분을 구체적으로 의식하면서 그분을 새롭게 체험하는 길이다. 나는 미국을 2번이나 차를 몰고 혼자 대륙횡단을 했고 그 외도 혼자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주님과의 구체적인 값진 체험들은 여러 유형의 크고 작은 즐거움을 다 합친다고 하드라도 비교가 안되는 소중한 체험이다.

이번도 유람선이 시애틀에서 출발하기에 시애틀까지 가는 방법은 비행기 또는 열차 아니면 나의 차를 몰고 가는 방법이다. 나는 역시 나의 차를 몰고 시애틀로 가는 방법을 택했다. 주변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까지 가는 편이 좋다고 나를 권유한다. 차를 몰고 가면 거의 14시간이상 차를 운전해야하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70이 넘은 고령이기에 차를 몰고 혼자서 먼 장거리 운전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체력이 장시간 운전을 감당할 수가 있겠느냐고 하면서 비행기를 이용해서 시애틀에 가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권유를 뿌리이치고 나의 차를 몰고 시애틀까지 가기로 결심을 했다. 혼자 장시간 좁은 공간 안에서 차를 몰고 운전을 하면서 체험한 주님과의 관계를 또다시 경험하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시애틀에서 유람선이 7월 19일(일) 오후 3시경 알래스카로 출항하기에 늦어도 오후 2시까지는 유람선에 승선해야한다. 나는 사전에 시애틀 한인 성 김대건 성당 주임신부님인 여준구 신부님과 통화를 했다. 유람선이 떠나기 전 그리고 1주일 후 유람선이 다시 시애틀로 돌아온 후 몇 일간 성당 사제관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통화가 되었다. 그리고 금년 2월에 출판한 유람선 지도신부의 이야기 란 책도 신자들에게 소개하도록 신부님이 허락하셨다. 이같은 일련의 일들이 미리 약속되었기에 나는 7월 17일 시애틀로 출발하기로 생각하고 나의 차를 일단 점검 받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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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운전을 하면 산과 들, 강, 호수, 광활한 초원 등 아름다운 자연의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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