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암리카’ (Amreeka)

2009-09-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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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여인의 미국 정착기

★★★★

이스라엘 점령지역인 웨스트뱅크서 16세난 아들과 함께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일리노이의 교외로 이주한 생활력 강한 팔레스타인 여인이 새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쓰면서 겪는 문화충돌과 인종차별 및 잡다한 경험들을 활기차고 인간미 가득하게 그린 훌륭한 드라마다.


편견과 약간의 폭력과 좌절 그리고 갈등이 있지만 감독 체리엔 데이비스(극본 겸)는 이를 관용하는 마음으로 유머를 듬뿍 섞어가면서 묘사해 기분이 좋다. 대중에게 크게 어필할 ‘물 떠난 물고기’ 얘기로 특히 이민자들인 우리들에겐 더욱 가깝게 느껴질 솔직하고 진지하며 큰 가슴을 지닌 영화다.

때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직전. 웨스트뱅크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직장인 은행까지 출퇴근할 때마다 이스라엘 검문소에 시달리는 이혼녀 무나(니스린 화우르)는 언니 라그다(히암 아바스)가 사는 일리노이의 교외로 아들 화디(멜카 무알렘)와 함께 이민 온다. 그런데 시카고 공항에서 쌈짓돈을 담은 과자깡통을 압수당하면서 무나는 무일푼의 신세가 된다.

의사인 남편과 세 자녀를 둔 라그다의 집에 짐을 푼 무나는 은행에 취직하려 하나 실패하면서 은행 옆에 있는 패스트푸드 식당의 종업원으로 들어간 뒤 이 같은 사실을 가족에게 숨긴다. 새 문화와 언어에 모두 서툰 무나가 이 식당에서 벌이는 여러 가지 해프닝이 재미있고 우습다.

한편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미국인들의 아랍인들에 대한 편견이 자행되면서 정치적 얘기도 거론된다. 그리고 화디가 인종차별주의자들인 학교 건달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으면서 참다못한 화디가 폭력을 행사한다. 화디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를 돕는 것이 교장(조셉 지글러). 그런데 유대인인 교장은 살이 토실토실하게 찐 무나를 좋아해 자꾸 눈길을 주는데 이런 정경이 아주 순수하고 아름답다.

이민자들이 겪어야 하는 문제와 좌절과 끈질긴 생명력을 따스하고 통찰력 있게 그린 작품으로 화우르의 꾸밈없고 토속적이며 생명력 있는 연기가 눈부시다. 제목은 아랍인들의 ‘아메리카’ 표기를 딴 것이다. PG-13. 아크라이트와 랜드마크.

HSPACE=5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일하는 무나는 새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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