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사자소학

2009-08-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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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가 한국에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형제는 서로 부둥켜안고 영화를 찍고 있다. 그래도 엄마 선물은 안 사왔는데 승욱이 선물을 사 온 것 보면 참 기특하기 짝이 없다. 한 달여 만에 만나는 아들이 키도 크고 좀 어른스러워 보인다. 집에 도착해서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거리기 시작이다. 원래 말이 없는 아이가 한국말로 뭐든 설명하는 모습이 그저 우습기만 하다.

“엄마, 나 청학동에서 이름이 뭐였는지 알아? 내가 안녕하세요, 저는 이승혁입니다. 미국에서 왔습니다”라고 인사했더니 애들이 “USA야? 외국인이야? 너는 지금부터 이름이 USA야” “그래서 나 USA로 이름이 바뀌었어” “에이 그래도 승혁이라고 부르라고 해야지” “훈장님하고 훈서님들은 이름 불러줬어. 형들이 내가 한문도 모르고 한글도 잘 모르니까 많이 도와줬어. 진짜 재밌는 일 많았어”

주섬주섬 챙겨온 가방에서 ‘사자소학’ 책을 가져온다. “엄마, 나 이거 공부했어. 한번 외워볼까?” 소파에 식구들을 앉혀놓고 꼬이는 혀로 사자소학을 읊는다.


“父生我身(부생아신)하시고: 아버지는 내 몸을 낳아주시고, 母鞠吾身(모국오신)이로다: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도다, 腹以懷我(복이회아)하시고: 배로써 나를 품어 주시고, 乳以哺我(유이포아)하시며: 젖으로써 나를 먹여 주시며, 以衣溫我(이의온아)하시고 : 옷으로써 나를 따뜻하게 하시고, 以食飽我(이식포아)하시니 : 밥으로써 나를 배부르게 하시니 恩高如天(은고여천)하시고 : 은혜는 높기가 하늘과 같고, 德厚似地(덕후사지)로다 : 덕은 두텁기가 땅과 같도다.”
‘아니 이게 뭔 소린가? 애가 어떻게 저걸 다 외웠지? 아들아~’

알고 봤더니 새벽 5시30분부터 일어나 사자소학을 공부하고 시험을 보니 안 외울래야 안 외울 수 없는 상황이었나 보다. “열심히 외웠는데 미국에서 왔다고 시험에서 빼줬어” “승혁, 그런데 뜻은 알고 외운 거야?” “음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내용이래”

나도 사자소학에 우리가 반드시 배워서 지켜야 할 생활규범과 어른을 공경하는 법 등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가르치는 생활철학의 글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리듬까지 맞춰 읊으니 제법 공부한 티가 팍팍 난다. 게다가 청학동에 가서 음식에 대한 소중함을 얼마나 배워왔는지 밥을 남기는 법이없고, 투정도 없다. 엄마와 난 그저 아들을 신기한 듯 쳐다볼 뿐이다.

“승혁, 내년에도 갈 꺼야?” “음 가긴 가는데 일주일만~”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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