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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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 (5) 휴대품 게르

2009-08-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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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10~15회 이동 … 2시간이면 집한채 뚝딱

나는 틈만 나면 지금도 몽골의 넓은 초원으로 달려간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들판에서 새카만 흑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들판에서 산으로 달리고 산에서 다시 강을 향하여 달린다. 그리고 목이 마르면 아무 게르나 찾아가서 아이락 한잔을 달라고 한다. 아이락 한 잔에 목을 축이고 약초냄새가 진동하는 벌판에 눕는다. 사방은 고요하고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온다. 파란 하늘에는 새털구름 뭉게구름 솜털구름이 여유 있게 우주유영을 한다.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베개 하고 누었으니 여기 인생의 낙이 있도다...’ 하는 옛 시 한편을 읊조린다. 세계적으로 유목문명은 오랫동안 존속하며 만들어 졌고 모든 대륙에 있었다. 중앙아시아에서의 목축은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몽골에서는 B.C. 4,000 년경에 시작하여 B.C. 1,000 년경에는 유목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몽골의 자연환경은 유목생활을 할 수 밖에 없도록 하였다. 몽골의 기후와 토질과 주변 환경은 정착하여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농사를 하기에는 매우 부적당한 것이었다.

그들이 야만적이거나 게을러서 유목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유목생활이야말로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1년에 평균 10회 정도의 이사를 해야 하니 얼마나 고달픈 삶인가. 더군다나 끊임없이 움직이며 제 멋대로 달아나는 가축들의 뒤를 쫓아 다녀야 하는 것이니... 이들은 자연적으로 초지의 형편과 물의 변화에 따라 가축을 이동시키는 법을 배웠고 사람이 탈 수 있도록 말을 조련시키는 지혜를 터득했다. 가축에게서 인간의 삶에 필요한 축산품과 유제품을 개발했고 가축의 질병을 치료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의식주 모두를 유목생활에 맞추어 조화를 이루며 사는 지혜를 터득한 것이다. 이들의 삶은 대단히 단순하며 간단하다. 그리고 솔직하며 정직하다. 이에 비하면 미국에서의 삶은 얼마나 번잡스럽고 고단하며 가면적이고 위선적인가?


지금도 도시를 제외한 몽골인들은 게르에서 산다. 그런데 이 게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휴대할 수 있는 집이다. 몽골인들은 이미 있는 집을 향해서 이주를 하는 것이 아니고 이주하는 곳에 집을 설치하는 것이다. 가느다란 나무를 엮어서 둥글게 만든 벽, 햇빛이 들어오고 환기를 하게 만든 마차 바퀴와 같은 모양과 크기의 천정, 게르의 중심을 잡아주는 네 개의 어른 팔 굵기의 기둥, 판자로 만든 나무 문 그리고 양의 털을 두들겨 뭉쳐서 만든 게르의 지붕과 벽이 집의 전부다. 이들은 집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데 숙달된 사람의 경우 두 명이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집안의 살림살이로는 난방과 취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가로 한자 세로 두 자의 난로 한 개, 나무로 만든 조립용 침대 두어 개, 유치원에서 사용하면 알맞을 아주 작은 등받이가 없는 소형 의자 몇 개, 그리고 소중한 물건을 담아둘 수 있는 조그마한 사물함과 역시 조그마한 선반을 겸하여 사용할 수 있는 장식장 한 개 정도이다. 초장을 따라서 끊임없이 이동해야 먹고 사는 이들은 지역에 따라서 많게는 1년에 10에서 15회를 이동하며 이동거리도 50km에서 100km를 이동하는가 하면 연평균 2-4회 그리고 10km 미만을 이동하는 유목민도 있다. 여름에는 그럭저럭 시원하게 살 수 있지만 시베리아의 한파가 몰
아치는 긴 겨울이 문제이다.

그러나 양털로 만든 텐트 안으로 들어가면 한 겨울에도 웃통을 벗을 정도로 덥다. 말린 소똥과 말똥으로 불을 지펴서 취사를 하고 난방을 하는데 화력 또한 엄청 센 것이 이 연료로 하지 못하는 요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냄새도 없다. 그야말로 자연친화적인 삶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가축의 말린 분은 화력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특기는 만두를 만들어 먹는 것인데 만두를 빚는 솜씨가 완전히 숙달된 조교의 모습이다. 저녁만찬이래야 만두 몇 개가 전부이고 아이락 한 잔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 소똥 불 위에 솥을 걸고 만두를 빚는 이들은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

내가 몽골의 전통가옥을 방문할 때 마다 느낀 것은 구약성경 지혜전승의 이 한 마디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7:1). 자연의 환경에 순응하며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유목민이기에 고기는 충분히 먹을 것 같았는데 실상 가서 보니 그렇지도 못한 것이 잡아먹을 양이 별로 없는 것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만두 속으로 양고기를 넣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그냥 칼국수를 만들어 끼니를 때우고 만다. 양고기와 양의 기름을 만두 속으로 빚은 만두를
먹노라면 기름이 줄줄 흐른다. 잠깐 두면 허옇게 굳는다.

함께 했던 러시아 박사인 몽골 교수는 그 먹다 남은 양기름을 손바닥에 넣고 쓱쓱 부벼 대더니 얼굴과 머리에 바르는 것이다. 몽골산 로션이다. 이들은 다만 겨울을 나기 위해서 거세한 양을 잡아 보관하는데 연중 최고의 명절인 구정(차강사르)때는 보통 양을 한두 마리 잡아서 먹는다. 강가나 물 곁에 게르를 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식수를 확보하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이들은 물을 매우 아껴서 쓴다. 한 컵의 물로 다섯 식구가 양치질과 세수를 해결한다.

추운 겨울 물 한 모금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몇 번하면 양치질은 끝난다. 그렇게 입속에서 오물거리는 동안에 덥혀진 물을 얼굴 위로 뿜어대며 한두 번 문대면 세수도 끝이다. 워낙에 물이 귀한지라 징기스칸 당시에는 물을 낭비하면 사형을 시켰다고 한다. 그러니 이들은 물도 아껴서 쓰는 검소함이 몸에 밴 것이다. 이들에게 물 쓰듯 한다는 말이 있을 리 없다. 샤워할 물이 있어도 하지 않는 참으로 독특한 문화이다.

게르 안에는 벽이 없다. 그러니 비록 가족간이라 할지라도 사적인 공간이 따로 없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게르의 크기는 대개 5평 정도이다. 이 공간에 많으면 3대가 산다. 어른들은 침대에서, 아이들은 맨바닥에 카펫을 깔고 잔다. 아이들은 지난밤에 이 게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안다. 그러나 총명한 몽골의 아이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넘어간다.


몽골인들은 대체로 힘이 센 편이다. 동의보감에도 양고기는 사람의 몸을 덥혀주고 기운을 더해 준다고 했다. 몽골여자와 결혼해서 사는 어느 한글학교 교사의 말에 의하면 양고기를 된장에 삶아서 한 6개월 먹으면 몸이 더워지고 체력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봄부터 게르 밖에서는 오축(五畜, 소, 말, 양, 염소, 낙타)들의 짝짓기가 시작된다. 그 소리가 또한 요란스럽다. 몽골의 어린이들은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보면서 자란다. 탈의실이 별도로 없는 대학체육관에서 여학생들은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돌아서서 옷을 갈아입는다. 이런 문화 속에서 살다 보니 몽골인들의 삶은 매우 개방적이다.

몽골에 온 선교사들은 대개 늦둥이를 둔다. 몽골에서의 삶이 회춘하게 만드는 것이다. 외식(外飾)하는 현대의 문화와 솔직한 유목문화, 그래서 갈수록 적지 않은 현대인들이 몽골로의 일탈(逸脫)을 꿈꾸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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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 안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몽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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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 안의 주방. 난로겸 취사기구가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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