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로만 한 약속

2009-08-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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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법률사무소는 1995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고객님들이 저희 사무실을 찾아와 주셨습니다. 한국분과 미국분 할것없이 모두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고객님과 미국 고객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한국분들은 죽을때까지 계속 자녀들과 함께 살기를 희망하지만 미국고객 대부분은 늙으면 양노원에 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최근 고객님 중 자녀들이 자신을 모시고 싶지 않아한다면서 혼자 죽을까봐 걱정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성이 조씨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자 조씨는 혼자서 외롭게 살고 계셨습니다. 자녀가 다섯이었지만 각기 자기 생활에 바쁘다보니 어머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조씨는 양로원에서 생애를 마감하고 싶지 않다면서 스스로 주체하기가 어려워질 때 자식 중 한명이라도 자신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습니다.

조씨는 돈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65만불짜리 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고객님을 모시는 자녀가 집을 물려받도록 유산계획을 세우도록 권해드렸습니다. 이런 유산계획을 보고 Conditional Gift, 즉 조건이 붙은 선물이라고 부르는데 제대로 세우기 위해 조건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예를 들자면, 몇 년 전 저희 사무실을 찾아오신 고객님 중 어머님을 혼자 모셨던 딸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형제들과 약속을 했습니다. 본인이 어머님을 모시는 대신 어머님의 재산을 혼자 물려받도록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종이에 적지않고 그냥 말로만 약속했습니다. 또한 가족만의 문제라면서 변호사를 의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얼마후 어머님이 많이 편찮아지셨습니다. 저희 고객님이 어머님을 자기 집으로 모셨고 더 편하시라고 간호사도 부르고 특별한 침대까지 구입했습니다. 약값도 저희 고객님이 혼자서 다 부담했습니다. 한밤중 어미님이 화장실에 가셔야 했으면 일어나서 도와드렸습니다. 목욕도 시켜드렸습니다. 음식도 차려드렸습니다. 병원에도 직접 모셔다드렸습니다. 이 모든것을 저희 고객님이 혼자서 다 했습니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몸이 많이 불편하셔서 8개월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시자 형제들은 저희 고객님이 어머님의 재산을 혼자 물려받을 정도로 고생하지 않았다면서 고소를 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지 않은 자녀들이 무슨 권한으로 고소할 수 있었으며 착한 딸이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너무 흔합니다. 때문에 꼭 남의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부모님을 더 잘 모시지 못한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남을 탓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즉, 착한 자식이 한 일을 얕보고 재산을 많이 주면 안된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죠. 내가 커지기 위해 남을 누르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형제들은 몸이 불편하신 부모를 모시는게 얼마나 힘들고 돈이 많이 드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몸과 마음이 약한 환자를 자신한테 유리하도록 이용하려 했던 보호자/간호인 때문에 피해를 본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환자의 유언장이나 다른 유산계획 문서에 자기 이름을 직접 넣기도 했고 환자가 죽을 때 전 재산을 자신한테 물려주지 않으면 더이상 간호하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보호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미국 국회는 부모를 간호한 자식이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도록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저희 고객의 경우 형제들은 이 법까지 들먹이면서 저희 고객님한테서 더 많은 재산을 뺏을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배울 점은 우선 유산계획을 반드시 세워야한다는 것입니다. 유산에 관한 모든 약속은 되도록 문서로 정확하게 기록하는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 기억을 잘하지 못할 수도 있고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더라도 이것을 증명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저희 고객님의 경우 다른 형제들은 저희 고객님과 세운 약속을 부인했습니다.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다들 주장했습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가요? 그건 본인들만 알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말로만 한 약속은 말일 뿐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김준 변호사 / 한미 유산계획 법률사무소 변호사
(800)793-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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