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함께하는 ‘분신같은 존재
몽골인들이 말을 다루는 것을 보노라면 마치 가족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부부지간이라고 할까 아니면 형제지간 이라고 할까 아니면 오래 된 친구지간일라고 할까 할 정도로 아주 친근하게 대한다. 말을 말 못하는 가축의 하나로 보지 않고 마치 존경하고 사랑하는 영혼을 가진 인간을 대하는 것 같은 일종의 경외심을 갖고 대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통적으로 몽골의 가정에서는 사내아이가 태어나서 돌이 되면 돌잔치를 하는데 이때 망아지 한 마리를 선물한다. 사내아이는 미처 걷기도 전에 망아지등에 올라타고 놀면서 망아지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이 망아지가 어른 말이 되어 새끼를 치게 되면 그것이 그 사내아이의 살림 밑천이 되어 분가하는데 한몫 단단히 하는 것이다.
몽골에서 진정한 사나이는 말등에서 태어나서 말등에서 놀다가 말등에서 죽는 것이다. 징기스칸을 비롯해서 여러 왕들이 말등에서 죽었다. 전사했다는 말이다. 몽골인의 하루는 말을 떼어놓고서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몽골의 국민주(國民酒)라 할 수 있는 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아이락(마유주,馬乳酒) 한잔을 마신다. 손님이 오면 마유주 한 잔을 대접하는데 넓은 대접이 찰잘 넘치도록 따라서 내놓는다. 특별한 간식거리가 없는 이들은 입이 궁금해 질 때마다 한 잔씩 마신다. 그리고 잘 때도 한 잔을 마시고 ...
한 번은 수도인 울란바타르에서 흡수골 호수 까지 스무 시간을 버스를 타고 여행하는데 이분들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일 리터짜리 콜라병 한두 개에 아이락을 담아 가지고 가는 것이다. 가다가 허기를 느끼거나 목이 마려우면 한 모금씩 마신다. 인심도 좋아서 한 모금 마시자면 기꺼이 내놓는다. 스무 시간을 달려가는 동안 식당도 없고 공중 화장실도 물론 없다. 버스운전기사가 소변을 보고 싶어서 차를 세우면 승객들은 다 내려서 일을 봐야한다. 처음 몽골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럴 때 참 난감해진다. 특히 여성분들은. 그런데 몽골의 전통적인 여성 복장은 마치 커다란 두루마기 같아서 그 두루마기를 재빨리 내리면서 일을 본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대자연 속에서 일을 보는데 누가 있건 없건 별 상관하지 않는다. 누구나 다 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부름 앞에서는 다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봐야한다는 대 명제 앞에서 사람은 누구나 솔직해지며 겸손해진다.
버스로 열 몇 시간을 달리면 마유주가 동이 난다. 그러면 비록 한밤중이라도 길 근처의 게르를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는데 집주인은 아무런 내색도 없이 문을 열어준다. 열린 문 사이로 남의 집 거실을 슬쩍 훔쳐보았다. 취사와 난방을 겸한 조그마한 난로 한 개와 작고 낡은 침대 한 개 그리고 다 낡아빠진 카페트 한 장이 전부다. 이불도 요도 안 보인다. 외출복 겸 이불 같은 옷을 입고 자다가 불청객을 맞이했건만 그래도 반가운 모양이다. 하긴 몇 시간을 달려서 찾은 집이다. 수 시간을 달려서 사람이 사는 집을 만날 정도로 이 땅은 정말 넓다. 커다란 페트병에 신선한 아이락을 가득 담아 주는데 일달러를 주니 대단히 고마워한다. 초롱초롱한 별들이 코 앞 하늘에 주르르 매달려 있는 것이 마치 감나무 밑에서 주렁주렁 열린 감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손을 올려 별을 잡으면 별을 딸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반짝거리는 초원의 하늘
이다. 들판에서 풍기는 약초 냄새가 마치 한약을 달이는 것 같아서 그 냄새만 맡아도 보신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은 아마도 몽골의 가을 초원에서만 가능하리라.
몽골의 상징은 말이다. 대통령 휘장에도 말 문양이 있다. 사람들은 말가죽으로 만든 목이 긴 부츠를 신고 다니며 말을 탈 때도 물론 이 부츠를 신고 탄다. 몽골의 대표적인 악기인 마두금(馬頭琴, 일종의 가야금 같은 것)의 윗부분은 말 머리가 조각이 되어 있다. 시골에서는 지금도 신부가 시집을 갈 때는 말을 타고 간다. 몽골인들은 없어진 말을 찾기 위해 일주일씩 벌판을 헤매고 다니는 것은 보통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말은 반드시 찾아서 데리고 온다. 한국판 비디오 테입 ‘야인시대’ 나 ‘대장금’을 빌리기 위해 말을 타고 삼일씩 걸려 도시로 가는 것도 보통이다. 몽골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생각컨대 말에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말을 잘 다룰 줄 몰랐더라면 불세출의 영웅
징기스칸은 아마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몽골의 국민적 축제인 나담은 세 개의 운동종목을 가지고 승자를 가르는데 이를 <남성 3종 경기>라고 한다. 말 경주와 활쏘기 그리고 씨름인데 그중의 백미는 물론 말경주다. 몽골인들은 옛날부터 이 세 가지 경주를 남성들의 자랑거리요 자신의 힘을 점검하는 관문이라고 생각했다. 몽골의 경마는 천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1709년 당시 사용했던 어떤 법률서적에 의하면 그 책의 한 장이 모두 경마의 규칙이다. 나담 축제 때 말 경주에서 승리한 말에게는 <일만 마리 중 뛰어난 으뜸 말>이라는 칭호가 내려지고 상금이 내려진다. 오늘 날도 매년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울란바타르시에서 약 35Km 떨어진 초원에서 축제가 열린다. 말 타기는 남녀구별이 없고 말의 나이에 따라서 주행거리가 달라지는데 보통 12km에서 35km를 달린다. 두 살짜리 말에서 부터 시작해서 세 살, 네 살, 다섯 살짜리 말의 경기, 씨말(種馬)들의 경기 그리고 6세 이상 말들의 경주로 구분한다.
한 번의 경주에는 나이별로 300마리에서 800마리의 말들이 참여한다. 5세에서 12살 이하의 어린 기수들만 참가할 수 있는 나담 경주 당일 이 소년들은 독특한 출정복을 입고 장군 모자를 쓴다. 마치 징기스칸이 세계를 삼키려고 전쟁을 일으키며 군대를 사열하며 지휘관들을 격려해주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장면 같다. 말들은 출발지에서 시속 60km에서 70km 속도를 내며 달린다. 수천 마리의 말들이 그 푸른 초원에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질풍노도같이 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25km에서 35km 구간을 달리는데 보통 1-2시간이면 완주한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안장도 없이 어린 친구들이 말과 하나가 되어 초원을 달리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 만점인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우승 말을 포함해서 5등까지의 말들에게 상과 특별한 칭호가 내려지는데 몽골의 대통령이 직접 상을 내린다.
또한 가장 늦게 들어오는 말에게는 ‘배가 부른 말’이라는 별명이 내려지는데 내년에는 일 만 마리중 으뜸이 되라고 축복해 준다. 그야말로 젖 먹던 힘을 내어 전 구간을 전 속력으로 달리는 말들 중에는 그만 도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고 기력이 다하여 달리기를 포기하고 어슬렁거리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두 살 박이 말 경주에서 우승하고 다음 해 세 살 박이 말 경주에서도 우승을 하고 마침내 전 종목에서 모두 우승을 한 말의 가격은 가격을 매길 수가 없을 정도로 고가의 몸이 된다. 내가 몽골에 있을 당시 그 가격을 물어보니 1억 원이었다. 의사의 봉급이 100 달러가 못되었고 러시아에 유학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대학교에서 20년 이상 가르친 정교수의 봉급이 100 달러가 못되었는데 말 한 마리의 가격이 일 억 이나 하다니...당시 보통 말 한 마리의 가격은 10만원이 못되었다. 사람들은 이 우승말로부터 씨를 받아 또 다른 우승말을 보려고 이 말과의 동침을 원하는데 지불해야 할 가격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부터 이 말이 상대해야 될 하루 밤 신부의 명단은 점점 많아지는데 말 주인은 그 말의 건강이 상하지 않도록 아주 특별한(?) 배려를 한다. 이러한 우승 말을 가진 사람은 몽골의 국민적 영웅이 되고 동시에 부도 거머쥐는 것이다.
몽골인들은 말을 직접 모는 기수보다는 그 말의 조련사를 더욱 우대해 준다. 이렇게 훌륭하게 말을 조련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담 경주에 출전할 말은 몇 달 전부터 특별 훈련에 들어간다. 양의 털로 만든 덕석을 입혀서 산야를 달리게 한다. 그러면서 땀을 흘리게 하고 물을 마음껏 마시지 못하게 한다. 말의 조련법은 가문에서 그들끼리 전승되고 발전하여 국민스포츠의 한 분야로 뚜렷하게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모든 말이 경
주마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말이든지 조련을 통해서 <일만 마리중 으뜸 말>이 될 수 있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는 말은 말들의 세계에서도 통한다. 진정한 승자는 혹독한 진통의 과정을 통해서만 탄생하는 법이니까...
몽고인에게 피붙이 같은 말들이 떼지어 이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