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대사(大使) 앰배새더 ‘Ambassador’의 어원은 몽골어 ‘암방새동’이다. 몽골의 징기스칸은 세계최초로 세계최대의 영토를 다스리면서 수많은 대사들을 파견했다.
징기스칸이 점령한 영토의 넓이는 무려 약 7770만 평방 킬로미터인데 이는 몽골을 중심으로 동으로는 고려에서부터 중국, 중앙아시아는 물론이고 인도와 이란 그리고 터어키를 포함해서 서쪽으로는 헝가리까지였고 북으로는 러시아의 모스크바, 남으로는 중국과 인도의 남부 그리고 팔레스틴까지 점령했던 것이다.
알렉산더가 점령한 영토는 350만 평방킬로미터였지만 그가 일찍 죽는 바람에 그가 명명한 그 제국의 도시들은 미처 이름도 알려지기 전에 망하고 말았다.
나폴레옹 일세가 점령한 영토는 120만 제곱킬로미터나 되었으나 그 역시 단명하고 말았으니 징기스칸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루살이 병정놀음에 불과한 것이었다.
징기스칸은 공식적으로 황제의 이름으로 150년간 세계를 통치했으며 그 후로 1,000년 이상 그 영향력을 세계에 행사한 것이다. 인도의 무굴제국, 아랍의 오스만제국, 러시아제국, 중국의 명·청 제국이 몽골제국의 후예들에 의해서 세워졌으며 그래서 그 시스템을 모방했고 그 영향을 받았음은 이미 학자들이 밝힌 일이다. 당시 유라시아(유럽+아시아)대륙의 인구는 2억이었고 몽골의 인구는 100만이 못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나마 군인으로 출전한 수는 겨우 8만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일천년의 인물로 징기스칸을 뽑았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세계의 역사를 기록해간 영웅 중의 영웅이다. 우리는 어릴 때 순사가 온다고 하면 우는 아이도 그쳤던 기억이 있다. 그것도 일본 순사가 온다고 하면 단번에 그치고 말았다. 지금도 구라파에서는 우는 아이들에게 겁주는 방법으로 몽골군대가 온다고 하는 말이라고 한다.(이것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과거에는 그랬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몽골군대는 잔인했다.) 대드는 자에게는 잔인하게 보복해서 아예 항거의 의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항복하는 자에게는 긍휼을 베푸는 그의 통치술은 현대전에서도 사용하는 고도의 심리전의 하나가 아닌가?
유능한 군인이요 빼어난 전략가요 불세출의 영웅이자 정치인이었던 징기스칸이 세계정복을 꿈 꿀 수 있었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몽골인의 진취적인 기상과 몽골의 기마병 부대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황소 100마리가 끄는 유치원 운동장만한 야전 사령관이자 황제인 징기스칸이 타고 다녔다는 마차 앞에서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전쟁지휘통제부였기 때문이다. 100마리의 황소는 요즘말로 하면 전천후 철갑 탱크인 것이다.
그리고 그 지휘부의 전후좌우로는 최강의 근위 기마병이 호위를 하며 중앙아시아의 대륙을 누볐으니 그의 기세에 산천초목도 벌벌 떨었으리라.
몽골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춥다. 오죽하면 소꼬리가 떨어져 나가는 추위라느니 양의 머리가 얼어 터지는 겨울이라느니 하는 말이 다 있을까. 그런데 몽골인들은 겨울에도 가축을 위한 우리를 만들지 않는다. 그 추운 겨울을 그냥 맨 몸으로 맞으며 보내는 것이다.
그 곳의 한 겨울의 온도는 30-40도로 내려간다. 그래서 많은 가축들이 겨울을 나면서 동사하고 만다. 추운 겨울 몽골의 벌판 게르에서 잠시 지낸 적이 있었는데 밤이 되니 말들이 모여서 몸과 몸을 맞대어 원을 이루어 서 있는 것이다. 새끼와 암놈들은 안으로 들여보내고 밖으로는 수놈들이 바람막이가 되어 그렇게 밤을 지새는 것이다. 나는 그런 몽골의 숫말들을 보면서 감동을 먹은 적이 있었다. 세상의 남정네들이 저렇게 가족을 위한다면 이 세상은 평화의 동산이 될 터인데....하면서 말이다.
징기스칸은 그렇게 강한 몽골의 토종말에다가 소 한 마리를 말려서 가루로 만든 식량을 역시 그 소의 건조시킨 위(胃)에다 보관하여 말 등에 싣고 다니며 전투식량으로 삼았다. 몽골군대는 스스로 병참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 고기가루에 물만 부으면 아주 훌륭한 식량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예비의 말을 한 마리 더 끌고 간다. 말이 피곤하면 옮겨 타고 다니니 그 기동성은 현대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리라.
게다가 그들은 활에 능한 민족이다. 최대 사거리가 900미터나 되는 활과 비교적 단거리용 (이것의 사거리는 500미터) 두 개의 활을 개인병기로 지참하는데 보통 60 개의 화살을 의무적으로 갖고 전투에 임한다. 활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우리 한겨레이다. 북방민족의 특징이 활을 잘 다루는 것이다.
원래 북방민족들은 부여의 주몽이나 몽골의 메르겐(mergen)이라는 칭호에서도 나타나듯이 백발백중의 명사수를 매우 우대하고 칭송하는 관습이 있다. 최초의 유목제국인 흉노에서부터 몽골에 이르는 역대 유라시아 기마민족들의 활은 말 위에서 화살을 발사하는 ‘파르티안 샷’, 즉 기마사법에 알맞게 제조하였으며 전투용과 수렵용의 두 종류가 있는데 화살은 사용용도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역대 북방민족 중 활과 화살의 기술이 가장 정점에 달한 시기는 역시 13세기 몽골제국 때이다. 이들의 말을 타고 쏘는 기마사법은 정확도와 사정거리에서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다. 총포화기의 등장 이전까지 북방 유목제국이 중국, 페르시아, 유럽 등의 주변 제국보다 군사적인 우위를 지니게 된 원인도 바로 이 사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몽골제국은 역대 북방민족 중 활과 화살에 대한 기술이 가장 정점에 달한 제국이다. 몽골제국의 활과 화살에 대해서는 당시 군사정찰의 목적으로 남송이나 유럽에서 몽골로 파견된 사신단의 보고서, 즉 조공의 몽달비록이나 팽대아, 서정의 흑달사략, 카르피니의 몽골여행기, 루브룩의 루브룩 여행기 등에 아주 구체적이며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바람같이 달려가서 비수같은 화살을 적의 심장부에 정확하게 날리며 파죽지세로 공격하는 몽골기병대 앞에 전 세계는 전율을 한 것이다. 그렇게 징기스칸은 세계를 차례차례 점령해 들어간 것이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실려 있는 몽골 기병의 전투 장면을 참조하시라.)
당시 몽골의 수도인 카라호름에서 고려의 수도인 개경까지 말을 타고 달리면 보름이 걸린다고 했으니 요즘 미국에서 몽골로 우편물을 발송할 때 소요되는 시간과 맞먹는다. 그들은 매 4킬로미터마다 역참을 운영했다. 전령이 잘 달리는 말을 타고 밤을 새워 달리면 몽골의 수도에서 어느 변방 끝이든지 한 달이면 도달했다고 하니 그들의 기동성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환경이 좋은 미국 땅에서 살면서도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해서 방황하거나 낙심하여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지 앞날이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몽골의 벌판으로 달려가서 징기스칸의 흔적을 찾아보길 부탁드린다. 징기스칸!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우리의 불세출의 영웅이다. 그는 지금 몽골인들의 신으로서 숭배를 받으며 모든 가정에는 그의 영정이 걸려있는 것이다.
<계속>
말을 타고 벌판을 달리는 신재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