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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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키스칸의 발자취를 따라서/ 한국은 이웃사촌이자 사돈나라

2009-07-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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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

몽골사람들은 한국을 ‘사돈의 나라’(査頓之國)라고 부른다. 고려의 마지막 100여 년 간 왕들의 이름에는 충(忠 )자가 들어갔는데 그들의 부인들이 모두 몽골의 공주님들이었다. 그러니까 그 왕들은 바로 몽골왕들의 사위들인 것이다. 제25대 충렬왕, 26대 충선왕, 27대 충숙왕, 28대 충혜왕, 29대 충목왕, 30대 충정왕등이고 그 유명한 노국공주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31대 공민왕의 비도 원나라 위왕의 딸 노국대장공주였다. 공민왕의 몽골식 이름은 빠이앤티무르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징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한 후 유독 고려국에 대해서는 자비를 베풀어서 그가 임명한 고려출신의 왕으로 하여금 고려를 다스리게 하였는데 이는 양국의 관계가 범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른 나라들은 몽골의 관리가 직접 통치를 하였는데 매우 잔혹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려에게만은 이런 특혜를 베푼것이다. 짐작컨대 징기스칸 출현 이전부터 한국과 몽골간에는 우호적인 관계가 이미 성립 되었던것같다.

몽골에 가면 우리의 잃어버린 상고사(上古史)를 알 수 있다. 고구려 이전 혹은 당대에는 몽골과 우리는 국경을 맞댄 이웃사촌 나라였다. 몽골의 동쪽 끝 초원지대에 가보면 그런 전설들이 많이 남아 있다. 예를 들면 고려촌이라는 동네이름이 아직도 여기 저기 있는데 이는 고구려 여인들이 시집을 많이 와서 사는 동네이기에 그런 이름을 붙여 준 것이다. 우리 배달민족이나 몽골족의 시원을 바이칼호수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그 호수에서 발원하여 일부는 그곳에 남아 몽골족이 되고 일부는 한반도에 정착하여 한민족이 되고 일부는 베링해볍
을 건너 북아메리카의 인디언이 되고 또 일부는 해협을 건너다가 북극동네에 남아 에스키모족이 되고 또 계속 남하하여 남미의 원주민이 되고... 그들의 뿌리가 같음을 보여주는 증거의 하나로 몽골의 바다격인 흡수골 호수 북쪽에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집인 나무 기둥을 모아 원추형으로 세워놓고 천으로 휘두른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천막과 똑같은 모양의 천막을 치고 사는 부족이 지금도 있는 것이다.


맨하탄의 인디언 박물관에 가보면 온양에 있는 우리 민속박물관에 온 느낌이 들정도로 비슷한 물건들이 많은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참빗이라든가 인두나 골무같은 것들은 세계적으로 두 나라들만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육당 최남선도 그렇게 보았다. 사실 두 민족은 너무나 흡사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대가족제도라든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나 형제간의 우애를 중시한다던가 음주 가무를 즐겨하는 것이나 손님접대를 성대하게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것등은 너무
나 같은 것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식사를 하면서 ‘고시레’ 하면서 밥 한 숫가락을 공중으로 던져 버리곤 했는데 지금도 몽골인들은 고시레의 습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 그렇게 하고 술을 마실 때 손가락에 술을 묻혀서 공중으로 튕기면서 ‘고시레’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먼저 한 수저 드리고 하나님께 먼저 한잔 올린다는 것이다.

구정이 되면 윷놀이를 하는데 그들이 사용하는 말판의 도개걸윷모가 우리의 그것과 똑같다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언어적으로는 알타이어족이니까 대충 같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였지만 실제도 약 300여개의 어휘가 같은 것이라는 데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얼룩말 달룩말, 연지, 곤지, 골무, 인두등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오른쪽으로 갑시다” 는 몽골어로 “바른쭉으로 야우야” 이다. 문법상으로도 동일한 것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몽골어를 쉽게 배울 수 있다. 해외의 민족들중에서 아리랑을 가장 우리와 같은 감정과 톤으로 부를 수 있는 것도 바로 몽골사람들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건데 몽골과 우리는 먼 옛날 헤어진 동족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총명한 공민왕이 노국공주를 잊지 못해서 괴로워하였다는 것을 안다. 예부터 남남북녀(南男北女)라고 했다. 남자는 남쪽의 남자가, 여자는 북의 여자가 여자답다 라는 말이다. 몽골의 여인들은 총명하고 부지런하고 쾌활하고 매력적이다. 지금도 대학교육을 시키는데 딸에게 우선권을 준다. 고려말 당시, 몽골에서는 고려여인을 부인으로 맞아들이는 것이, 고려에서는 몽골여인을 그렇게 맞아들이는 것은 유행이었다고 문헌에 남아 있는데 이것은 소수의 특권층들만이 할 수 있는 호사였었다. 2007년 3월 20일에 서울의 외교센터에서는 한국과 몽골의 국가 연합 세미나가 열렸었다.

이날 세미나는 (사단법인)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소장 이재형·국제정치학 박사)가 주최했는데 이 세미나의 핵심은 한국과 몽골은 인종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동일한 점이 많으며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므로 국가 연합(Confederate)을 해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세미나가 열리고 타당성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과 몽골은 1990년 3월26일에 국교를 수립한 이래 여러 방면에서 관계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같은 몽골로이드 혈통이어서인지 양국 국민은 이례적이라 할 만큼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 국민 간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양국 국민간 우호관계가 무르익어 어느새 ‘우리가 남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동질감을 갖게 됐다.

몽골의 국토는 우리의 일 곱 배나 크지만 인구는 불과 300만 명에 불과하다. 몽골의 국토에는 금은동 구리같은 지하자원이 무진장 매장되어 있어서 세계자원 10대 부국에 들어갈 정도이다. 우리가 곧 남북통일을 하고 몽골과 손을 잡을 수 있으면 우리는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에서의 패권은 물론이거니와 세계의 패권국으로 등장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광활한 몽골국토를 이용해서 농사와 목축을 하면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지하자원을 활용한다면 최고의 산업국가라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잡한 러시아 문자를 사용하고 있는 몽골을 설득해서 한글을 몽골의 문자로 사용하게 되면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전국민에게 컴퓨터를 보급하는 것이다. 전국민이라고 해야 가구 수로 따진다면 수십만에 불과하다.

지금 몽골이 벌어들이는 달러의 상당부분이 한국에 가서 일하는 몽골인들이 송금하는 것이다. 한때는 몽골외화의 30%가 한국에서 송금되어 오는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미국을 올 때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왔듯이 그들은 코리안 드림을 갖고 지금 한국을 찾는다. 몽골인구의 20%가 한국에서 일을 했거나 여행한 적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한국을 좋아한다. 우리는 사돈지국이고 형제의 나라이다. 일본을 제압하고 중국을 견제하려면 몽골과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빼앗긴 대마도를 찾아오고 간도를 포함한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Pax Koreana(한국이 주도하는 세계평화의 시대)를 꿈꾸어 본다... 그렇게 해서라도 세계평화를 이룩했으면 좋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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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을 뜯고 귀가하는 양 새끼들을 어미에게 돌려주는 목자. 그 많은 새끼와 어미를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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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에서 말타는 법을 배우는 신재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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