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9-06-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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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 속으로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다. 엄마는 도시락을 싸느라고 분주하기 이를 때가 없다. “그냥 대충 햄버거 사먹지. 뭐 하러 고생을 하고 그래?”

“이 식구가 햄버거 사먹으려면 돈이 얼마인 줄 알아?” “밑반찬하고 밥 싸 가면 식당 찾느라고 고생 안 해도 되고, 돈도 절약되고.”

이게 얼마 만에 떠나보는 여행인가. 1박2일로 요세미티를 가려고 길을 나섰다.


요세미티 근처에 숙소를 정해 들어갔는데 승욱이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신발도 안 벗고, 옷도 안 벗겠다고 한다. “승욱,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산을 올라갈 거야. 빨리 씻고 자자” 한시간을 달래고 어르고 소리를 질러도 절대 옷을 안 벗는다. 침대에는 겨우 누웠는데 신발도 옷도 그대로다.

“엄마랑 잘 거야. 엄마, 여기 누웠잖아. 엄마랑 자자.” 뭐가 그리 불안한지 아무 것도 못 만지게 하더니 내 옆에 딱 달라 붙어 있다. 낯선 냄새, 낯선 환경에 계속해서 이불냄새를 맡고 있다. 새벽 3시까지. 잠도 안 자고 꼼지락 꼼지락 내 옆에 누워 있다.

아침 기상시간, 식구들 모두 일어났는데 정신없이 자고 있는 녀석은 승욱이 뿐이다. 요세미티로 출발하면서 라피 아저씨의 음악을 크게 틀어주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주어도 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린다. 요세미티 입구에 들어서니 빼곡한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준다.

“산림욕 시간~” 앞뒤 창문을 다 열고 시원한 바람을 쐬어주니 깊은 잠을 자던 승욱이가 드디어 일어났다. 센바람이 얼굴을 사정없이 때려대니 입을 벌리고 바람을 들이 마시고 있다.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꼬불거리는 산길에 멀미난다고 다들 불평인데 승욱이만 신이 났다. 한시간을 넘게 산길을 가는 동안 아이들은 기진맥진하는데 혼자 기분 좋은 아이는 승욱이 뿐이다.

시냇가에 앉아 나무 그루터기에 승욱이를 앉게 해주었다. 차가운 시냇물도 만져주었다. 울퉁불퉁 비포장 길도 걷게 해주었다. 햇빛 쏟아지는 곳에 앉혀서 뜨거운 태양도 느끼게 해주었다. 나뭇잎도 맘껏 만져 보게 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도 느끼게 해주었다. 산 냄새도 맘껏 들이마시게 했다. 먼지 바람 부는 곳에 먼지도 느끼게 해주었다. 자연 속에서 아이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집에 있으면 절대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오늘 승욱이가 배우게 되었다. 집으로 오면서도 계속 행복해하며 아무 불평의 반응도 없는 아이. 자연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승욱이만의 특권이 아닐까?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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