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타운 주택시장 ‘열쇠전쟁’

2009-06-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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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바이어 거래 먼저 성사”
일부 에이전트 키박스서‘슬쩍’
차압매물 10채중 9채꼴 극심


LA 한인타운 부동산 시장은 바야흐로 ‘열쇠의 전쟁’이다.

은행 차압매물 공급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 은행차압 매물이 리스팅에 오르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에이전트들이 다른 에이전트들도 이용하도록 설치해 놓은 키박스에서 열쇠를 슬쩍(?)해 사라지기 때문이다.


다른 에이전트들이 집을 못 보도록 시간을 벌어 놓으면 자신의 바이어가 가장 빨리 에스크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욕심’에서다.

에릭 민 켄프라퍼티스 에이전트는 “지난 한주 LA 한인타운에 나온 차압매물을 고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섰지만 집 열채 중 아홉채에서는 열쇠가 없어, 함께 간 바이어에게 민망할 정도로 큰 낭패를 당했다”며 “기가 막히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유독 LA 한인타운에서만 심하기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가 한인 에이전트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원래 주택이 매물로 나오면 각 지역 부동산 보드에 가입돼 있는 에이전트들이 자유롭게 바이어들에게 주택을 보여줄 수 있도록 현관 열쇠를 담은 열쇠상자인 수프라(Supra) 키박스가 주택 앞에 설치된다. 보드에 속한 에이전트들은 이 키박스를 열어볼 경우 자신의 흔적이 남기 때문에 열쇠 도난의 우려가 적다.

한인타운의 경우 관할 부동산 보드가 명확하지 않아 수프라 키박스는 거의 설치되지 않는 실정이고, 차압매물의 경우 비밀번호로 열수 있는 콤비네이션 록박스가 설치되고 리스팅 에이전트가 바이어 에이전트에게 이 번호를 알려주는 방식이다.

주택매매 건수가 아직도 극도로 부진한 상황에서, 모든 바이어들이 원하는 은행차압 매물은 아주 적다보니 이런 상황이 지난해 중반 이후부터 점차 심해지다가 지금은 전날밤 리스팅에 올랐다고 하면 다음날 아침이면 키가 없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LA 한인부동산협회 크리스 엄 회장은 “한인타운에서 이런 현상이 너무 심해지다 보니 매물을 보려해도 리스팅 에이전트가 회사 이름과 에이전트 이름, 라이선스 번호까지 달라고 한다”면서 “그나마 새벽 일찍 가서 키를 빼내 복사한 다음에 돌려놓는 에이전트는 양심적인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LA 한인타운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선 이런 현상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발렌시아에서 활동하는 뉴스타부동산 제이슨 송 에이전트는 “수프라박스가 아닌 다른 키박스를 걸어놔도 분실된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에릭 민 에이전트는 “1월 말을 기점으로 차압매물 공급이 줄어드는 추세고, 반대로 주택가가 하락추세를 멈추고 상승세로 돌아설 숨고르기를 하면서 이런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면서 “아무리 어렵다지만 한인 에이전트들이 이런 몰상식한 행동은 자제해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배형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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