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 감정의 응어리가 있더라도 성숙하게 해소하면서 마지막 떠나보내는 길이 아름답도록 함께 노력하자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2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참여정부의 `왕수석’으로 통하며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그는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에도 지근거리에 머물다 영면의 순간까지 곁을 지킨 `영원한 비서실장’이 됐다.
문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몸을 던졌다.
2004년 3월 노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됐을 때는 해외 체류 도중 급거 귀국해 법적 대리인을 맡았다. 최근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을 때도 변호인역을 떠안았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투신했을 때 서거 소식을 언론에 공표한 이도 문 전 실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과 문 전 실장의 인연은 2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신반대 투쟁을 벌이다 옥고를 치렀던 문 전 실장은 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법관 임용에서 탈락하자 미련없이 부산으로 귀향했고, 그 때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사람이 노 전 대통령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부산.경남지역에서 시국.노동사건 변론을 도맡다시피하면서 동업자에서 동지적 관계로 발전한다.
노 전 대통령은 16대 대선 한달 전인 2002년 11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라고 말했다. 비록 나이는 노 전 대통령이 문 전 실장보다 7살 많았지만 얼마나 그를 신뢰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각별함 때문에 문 전 실장은 참여정부 시절 네 번이나 수석비서관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이 자서전에서 문 전 실장을 언제나 냉정하고 신중하며 권세나 명예로부터 초연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듯 그는 민정수석을 두 번이나 역임했다.
`원칙주의자’, `대쪽’으로 통하는 성격 탓에 그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에서 부산 출마 요구를 받자 정치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다며 민정수석 자리에서 사퇴했다.
또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 시민들이 왜 부산정권으로 안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발언했다가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선거참패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이런 불만은 같은해 8월 노 전 대통령이 문 전 실장을 법무장관 후보로 검토했지만 열린우리당의 반발로 `문재인 카드’를 접게하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문 전 실장은 이날 현재 심경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지금은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아름답게 잘 치르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지나간 일을 놓고 말할 시기가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말할 때가 있지 않겠느냐라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둘러싼 회한과 마음 속 응어리를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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