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9-05-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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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엄마

첫 아이를 낳고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할 때 엄마는 나의 산후수발과 외할머니의 병 수발을 함께 하셨다. 시간마다 울어대는 신생아와 대소변을 혼자 해결하기 힘든 할머니를 엄마 혼자서 수발을 들었다. 첫 아이가 백일이 되었을 때 할머니는 엄마 옆에서 임종하셨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하는 것을 보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난 엄마의 발끝도 못 따라가는 딸이다.

1년 전 엄마가 심장수술을 하러 수술실로 들어가셨을 때 ‘하나님, 제발 엄마 좀 살려주세요’라고 목놓아 울며 엄마만 살려주시면 못다 한 효도 다하겠다고 해놓고선 지금 회사 갔다 돌아오면 엄마를 보며 “엄마, 배고파~” 엄마 얼굴만 보면 왜 그리도 배가 고픈지, 효도는커녕 지금까지 엄마를 괴롭히며 살고 있다.

마더스 데이가 다가오니 마치 연중행사 준비하듯 “엄마 뭐 갖고 싶은 것 없어? 먹고 싶은 것 없어?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없어, 갖고 싶은 것도, 먹고 싶 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잘 생각해 봐” 에구, 철없는 딸 같으니라고 엄마는 당연히 없다고 하지 있다고 하냐?


사실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승욱이하고 있는 걸 제일 좋아하신다. 만약 하나님이 다시 태어나면 누구랑 결혼하고 싶냐고 물어보신다면 당연히 승욱이라고 말할 거란다. 한 마디로 나의 라이벌이다. 나도 승욱이랑 결혼할 건데, 엄마와 나의 영원한 짝사랑 때문에 엄마는 그나마 웃으신다. 우리 엄마가 화났을 때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승욱이 밖에 없다. 나는 턱도 없다.

처음부터 유난히 승욱이를 사랑하셨던 우리 부모님 덕분에 나도 아이를 빨리(?) 사랑할 수 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더 사랑하는 엄마를 보며 엄마의 엔돌핀 승욱이를 더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것이 엄마에게 다른 어떤 것으로 효도하는 것보다 더 값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승욱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여자 넘버원이 엄마인 나이고, 넘버 2가 우리 엄마이다. 이번 마더스 데이에는 넘버 2에게 승욱이의 재롱을 맘껏 보여드려야겠다. 물론 넘버원의 자리도 기꺼이 내 드리려고 한다. 그리고 찬송가 304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도 불러 드리고 싶다.

‘어머니의 넓은 사랑 귀하고도 귀하다/그 사랑이 언제든지 나를 감싸줍니다/ 내가 울 때 어머니는 주께 기도 드리고/ 내가 기뻐 웃을 때에 찬송 부르십니다’ 이 찬송만 부르면 엄마는 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난다고 했다. 끝까지 할머니의 병 수발을 하셨음에도 불구, 못 다한 효도가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나도 먼 훗날 이 찬송을 부르며 눈물 흘리며 후회하지 않도록 엄마에게 함께 있을 때 잘해 드려야겠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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