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9-05-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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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숙사로 가는 길

토요일 이른아침 6시20분, 어김없이 알람시계가 울린다. 일주일 중에 가장 긴장이 풀리는 토요일은 사실 일주일 중에 가장 바쁜 날이다. 서둘러 일어나 승욱이 먹거리를 챙기고 기숙사로 달려간다. 2년6개월째 한 주도 빠짐없이 같은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오는 나를 기숙사 사람들은 시계라고 놀리곤 한다. 기숙사 게이트의 비밀번호를 누르면 안에서 묻지도 않고 굳게 닫혀진 문을 열어 주기도 한다.

아이를 기숙사로 보낸 지 2년을 훌쩍 넘기면서 혹시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가는 일이 습관처럼 되면 어떡하나 한때 고민한 적도 있다. 같은 시간, 같은 스케쥴, 같은 먹거리, 같은 사람들. 똑같이 반복되는 것에 혹시 아이 또한 습관처럼 토요일이면 나를 만나고 사랑의 교실을 가고 피아노를 치고 집에 와서 맘껏 놀고…. 이런 변화 없는 일상이 과연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난 또 다른 발견을 하게되었다. 비장애아동이면 똑같이 반복되는 일정이 지겨울 수도 있지만 장애아동들에겐 특히 시청각 장애아에겐 정해진 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스피치를 하는 것과 사랑의 교실을 가는 것과 피아노를 치는 일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일과 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통해서 아이가 본인 스스로 시간의 흐름을 알고 다음 스케줄을 준비하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 혼자 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진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라고 일일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독립적으로 시간을 분배하여 놀고 하루를 정리하는 아이가 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발견이다.

우후죽순으로 아니면 주먹구구식으로 주말시간을 아이와 보냈으면 지금도 아이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언제 샤워를 하고 자야 하는지 개념이 없는 아이였을 텐데 기숙사에서 시간에 맞춰 생활하듯 주말에 집에 와서도 시간에 맞춰 생활을 하니 아이가 헷갈려 하는 것도 없고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도 거의 정확하다.


매주 토요일 기숙사로 가는 길이 언제나 새로운 이유는 승욱이가 언제나처럼 나를 기다리고 주말에 함께 할 사람들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키가 자라고 몸이 자라면서 조금씩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모습으로 커가는 것이 한없이 고마울 뿐이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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