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렘 팬츠’ 엘레강스한 헐렁함

2009-04-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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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행경향과 코디법

정장풍엔 짧은 재킷이 적당
실크 블라우스와 하이힐 매칭


계절이 한창 무르익어 가는 이맘때면 무대를 내려온 배우처럼 허탈하기가 그지없다. 대부분의 패션 관계자들과 트렌드 세터들은 한두 계절을 앞서 다가올 시즌의 트렌드를 짚고 유행경향을 타진해야 하는데 그렇게 시즌 시작 전부터 트렌드란 걸 주도 면밀 분석하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머스트 해브 아이템 리스트를 작성하고, 백화점 세일기간 족집게 도사 마냥 알뜰살뜰 이용해 옷장 안에 흐뭇한 ‘완소‘ 아이템들 모셔 놓고 보면 딱 그 계절의 한복판이다. 물론 트렌드 세터들에게는 아직도 패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간절기 아이템들이 남기도 했거니와 미처 레이더에 걸리지 않은 아이템들을 중심으로 ‘나머지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하여 이쯤에 이르면 허탈해 지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어진다. 트렌드의 대장정에 나서 꽤 많이 온 듯도 하나 갈 길은 멀고, 해놓은 것은 미미해 보여 시큰둥해 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트렌드 세터들은 때때로 패션의 눈부신 유혹 혹은 욕망과 쌩얼로 대면하는 그 적나라한 순간, 허망하다랄까 허탈하다랄까 하는 배신감을 갖게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번쩍’ 정신이 드는 그 순간이 있으니 영혼까지 빼앗길 것 같은 아이템 하나와 마주하는 순간이다. 미술관을 순례하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목을 길게 빼고 올려다 본 아이템이 있으니 바로 하렘 팬츠다.


■하렘 팬츠 유행경향


알다시피 이번 시즌에 새롭게 선보인 아이템은 아니다. 어찌 보면 패션계에선 구문일지도 모를 이 하렘(harem) 팬츠는 몇 해 전 처음 시장에 첫선을 보였을 때만 해도 하이웨이스트 팬츠만큼이나 다들 뜨악해 했다. 스키니 진의 요란한 행진 나팔소리가 채 가시지 않은데다 어떻게 입어도 어정쩡해 보이는 실루엣을 ‘민간인’이 감당하기엔 좀 심해도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해서 말이다. 첫선과 함께 일명 ‘똥 싼 바지’라는 애칭을 얻은 하렘 팬츠는 그 별명이 이미 말해주듯 엉덩이 부분이 너무 헐렁한 게 특징.

앞면 역시 허리선에서 무릎부분까지 풍성한 주름이 잡혀 있어 웬만큼 스키니하지 않은 이들이 아니라면 소화하기 힘들어 보인다.

원래 하렘 팬츠의 공식 패션 용어는 사루엘(Sarouel). 그러니까 ‘신밧드의 모험’의 주인공 신밧드는 물론 자스민 공주가 입었던 그 팬츠다.

굳이 하렘 팬츠의 등장에 대해 굳이, 억지로 분석을 해보자면 최근 계속되는 몸매를 꽉 조여, 섹시함을 드러내는 스키니 진에 대한 여성들의 반발과 패션 전문가들의 새로운 돌파구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활동성을 강조한 하렘 팬츠는 세계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의 손에서 보다 더 여성스럽고 엘레강스하게 재해석됐다. 그들의 장사 소견으로 아무리 황당 테마라 할지라도 페미니즘을 덧입혀 실패하는 법은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소재는 간혹 리넨과 코튼 혼방이 보이기는 하나 실크와 새틴이 완전대세. 길이는 무릎을 살짝 덮는 크롭트 팬츠에서부터 발목까지 오는 앵클 팬츠까지 다양한 편이다. 컬러는 블랙과 골드, 실버 등이 선보이는데 역시 쉽고 편하게 코디하기엔 블랙이 최고지만 빛 바랜 광택감 도는 바이올렛 컬러나 그레이 컬러도 입으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 할 수 있을 듯.

이번 시즌 가장 아름다운 하렘 팬츠의 해석을 보여준 이브 생 로랑에서부터 전통적인 아메리칸 스타일을 지켜온 랄프 로렌, 최근 핫 아이템을 연달아 내놓고 있는 프로렌자 슐러(Proenza Schouler)를 지나 드레스의 지존 다이안 본 퍼스텐버그, 로버츠 로드리게즈(Robert Rodriguez) 등과 같은 쟁쟁한 디자이너 브랜드들도 하렘 팬츠 출시에 열을 올렸다. 보다 더 클래식한 하렘 팬츠를 원한다면 두리(Doo Ri)에 들르면 베이직하면서도 시크한 베이지 컬러 하렘 팬츠와 대면할 수 있겠다. 물론 컨템포러리 리딩 브랜드인 엘리자베스 앤 제임스, L.A.M.B 등에서도 다양한 길이와 소재의 하렘 팬츠를 내놓아 눈길을 끈다.



■어떻게 입을까

사실 어떻게 입을까는 하렘 팬츠를 구입하기 전부터 해야 하는 질문이다. 일단 유행 아이템이니까 사놓고 보자라고 지름신의 강림을 받아들이면 옷장 속에 고이고이 모셔놓고 다음 시즌까지 택도 떼지 못한 채 옷장 속에서 잠만 자게 될 공산이 크다. 직장에서 포멀하게 입을 것인지, 주말 나들이 길에 입을 것인지, 혹 이를 적절하게 멀티 플레이어로 소화할 것인지를 일단 정하길. 그러면 소재와 디자인에 대한 대답이 나온다.

정장 풍으로 입기 위해선 여기에 매치할 너무 길지 않은 재킷이 필요하다. 몸에 잘 피트되는 숏 재킷과 안에 실크 블라우스를 매치하고, 하이힐을 신는다면 직장이나 일터에서 입기에도 무난하다.

물론 사실 런웨이 속 모델들의 하렘 팬츠에는 밑창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보고 싶을 정도로 납작한 글래디에이터 슈즈를 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트렌드인데) 민간인이 그렇게 입었다가는 완전 ‘몸빼 패션’에 다름없어 보일 가능성이 많다. 물론 ‘기럭지’ 되고 몸매가 된다면야 플랫 아니라 혹 고무신을 매치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만약 캐주얼로 입겠다고 작정한다면 새틴이나 코튼 모두 괜찮고 컬러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상의 역시 꼭 붙은 스파게티 스트랩 달린 탱크탑을 입어도 괜찮겠지만 요즘 대세는 보이프렌드 티셔츠다. 남자친구의 헐렁한 티셔츠를 빌려 입고 나온 듯한 ‘간지’나는 물 빠진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쳐 입고 그 위에 역시 아라비안 패션의 일종인 쉬마그(Shemagh) 스카프를 목에 아무렇지도 않게 둘둘 감아주면 되겠다.

이제 막 하렘 팬츠에 대한 재해석과 분석을 하기 시작한 트렌드 세터라면 아마도 이맘때쯤 신열처럼 찾아오는 허탈함을 조금이나 이기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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