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9-04-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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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가 있다

뭘 먹을까? 배꼽시계가 점심이 오는 것을 알린다. 아, 오늘은 또 뭘 먹을까? 가끔 점심 먹는 것이 고민스러울 때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한다. 오늘의 점심메뉴라는 코너를 신문에 연재라도 한다면 직장인들이 덜 고민하지 않을까? 나만 점심시간을 고민하는 걸까? 하여간 패스트푸드점의 쿠폰을 다 써버려서 오늘은 더 고민을 하는 중이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 때문에 한식을 매일 먹기에는 좀 부담스럽다. 그런데 스산한 날씨 탓에 따끈한 국물이 먹고싶어 사무실 가까운 곳에 값싸고 맛있는 밥집으로 들어섰다.

이른 시간이라 테이블 여럿이 비어 있다. 혼자 앉아서 밥을 먹는데 어디서 많은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들어온다. 괜히 혼자 먹고 있는 테이블이 미안스럽다. 식사를 빨리 끝내려고 뜨거운 국물을 입천장이 데이도록 후루룩 먹고 있는데 일하시는 아주머니와 눈이 딱 마주쳤다. “천천히 드세요. 어차피 손님들이 알아서 기다리세요” “혼자 테이블 쓰고 있는 게…” “혼자 오신 손님은 손님이 아닌가요? 마음놓고 드세요. 뭐 필요한 것 있으시면 더 드릴께요 “갑자기 밥을 먹는데 왜 이리 고마운지. 아주머니의 말 한마디에 향기가 있다.

요즘 직장인들은 피곤하다. 그 중에 아줌마 직장인들은 더 피곤하다. 아침부터 아이들 학교 챙겨보내며 출근전쟁에 회사 가면 전투같이 일을 하고 점심은 뭘 먹을까로 고민하다 오후에는 나른한 몸을 주체하면서 퇴근길도 만만찮게 막히는 길을 뚫고 집에 가면 또 가사 일을 해야 하는 아줌마 직장인들은 더 피곤하다. 하루 중에 밥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어찌 보면 점심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식당들의 음식 맛은 다 훌륭한 것 같다. 특별히 맛없는 식당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식당은 어떤 곳일까? 일단 메뉴가 많고, 값이 싸며, 친절한 곳인 것 같다.


특히 스트레스 받고 있는 직장인에게는 이왕이면 친절한 식당으로 발걸음이 간다. 지갑사정이 좋은 날은 난 향기롭게 말해 주시는 아주머니가 일하시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는다. 나뿐만 아니고 알고 보니 그 집은 언제나 점심시간에 직장인들로 줄을 잇는다. 자주 가면서 관찰해 보니 직장인들뿐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절한 것을 보았다. 요즘은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정을 먹으러 가는 것 같다.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전부 친절하고 주인 아저씨까지 넉넉하시니 그 식당이 이런 불경기에도 손님이 많은 이유가 있다. 지친 직장인들에게 맛있는 밥과 더불어 인정스러운 말 한마디가 반찬이 되니 난 오늘도 기분 좋게 점심을 먹었다. 맛있는 점심으로 오후가 더 활기차 진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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