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먹는장사 이렇게 하라- 상황을 지배해라

2009-04-08 (수)
크게 작게
예전에 책에서 읽은 이야기이다. 70년대 후반 한국에서 배추 파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때 배추 농사가 전국적으로 흉년이 들어 배추 값이 열 배 이상이 올랐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김치 담그기를 포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식당에서도 배추 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 양배추로 김치를 담가서 손님들에게 주었다. 그런데 명동에 있는 한 칼국수 집은 그 비싼 배추로 김치를 만들어 손님이 원하는 대로 김치를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일대 직장인들은 집에서도 못 먹는 김치를 먹기 위해서 점심시간이면 그 가게 앞에 줄을 섰다. 그리고 배추 파동이 끝날 때쯤에는 그 칼국수 가게는 명동일대만이 아닌 서울 시내에서 유명한 식당이 되었다고 했다.

이런 예는 이곳 미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삼년 전이라고 기억된다. 남가주에 이상 한파로 토마토가 한 개에 이삼 달러씩 할 때가 있었다. 그때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식당들도 가게 앞에 토마토 가격이 너무 올라 음식에 넣을 수 없다고 써서 붙일 정도였다. 그런데 유독 인앤 아웃 햄버거는 평상시와 똑같이 큼지막한 토마토를 햄버거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손님들이 토마토를 더 달라고 해도 기꺼이 응해 주었다. 내 생각에는 그렇게 하면 햄버거를 팔면 팔수록 손해가 될 텐데 그래도 인앤 아웃 햄버거는 음식의 질에 관한 한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햄버거 하면 인앤 아웃을 최고로 여기고 언제 가도 그 가게는 손님으로 가득하다.

나는 두 가게의 예를 보면서 식당을 경영하는 사람은 상황에 지배당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교훈을 얻었다. 보통의 식당 경영자라면 특정 재료값이 심하게 오르면 당연히 그것의 사용 양을 줄이고 아니면 음식에서 그 재료를 빼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현명하고 상황에 잘 적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음식장사도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이익이 줄어드는 일이라면 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음식의 질과 연결이 되는 것이라면 단기간의 수익이 줄어들더라도 그 상황에 지배당하면 안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칼국수 가게와 인앤 아웃 햄버거는 그 기간에 아마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손님들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음식의 질만은 좋게 유지한다는 믿음을 심어주었고,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로 두 가게에 되돌아왔다. 식당 사업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돌발상황이 벌어진다. 그럴 때 무엇보다도 원칙을 가지고 상황에 지배당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원칙은 어떠한 경우에도 음식의 맛과 질은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이어야 한다. 음식장사가 파는 음식에 대한 신뢰를 손님들에게 주지 못한다면 사업의 미래를 장담하기 힘들다.

요즘 불경기라서 모두가 어렵다. 그런데 상황이 좋지 않다고 가격만을 내리고 그 가격을 맞추려고 재료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선택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상황에 지배당하지 말고 원칙을 정하고 밀고 나가라. 그리고 음식장사는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드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물론 단기간의 손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원칙을 가지고 상황을 지배한 가게만이 살아남는다.

이재호
(와우 벤토 대표)

이것이 핵심

1. 음식장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야겠다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2. 상황은 변한다. 하지만 원칙을 가지고 그 상황을 지배하도록 해라.
3. 장사는 길게 봐야 한다. 단기간의 손해에 연연하지 말고 오랜 시간 잘 될 수 있는 길을 가라.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