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9-03-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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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노릇

요즘 제법 말대꾸를 하는 큰아이에게 많이 화가 나 있는 참이다. 한번 크게 혼내주려고 단단히 벼르던 참에 토요일 새벽 승욱이를 기숙사에 데리러 가는데 잠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나를 따른다. “승혁, 어디가?” “엄마 따라 가려고” “토요일인데 더 자지” “아니, 엄마 따라 갈 거야”

차에 함께 타고 가면서 승욱이 기숙사로 갈 때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뭔가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아이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다. 승욱이를 스피치 시간에 들여보내고 아침을 함께 먹으려 마주 앉았다. “엄마한테 뭐 할 말 있어?” “응” “뭐?” “엄마는 왜 뭐든지 엄마가 결정해? 나한테 이젠 물어보고 결정해 줘” “엄마가 항상 물어보잖아” “엄마가 뭔가를 결정하고 내가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잖아” “엄마가? 언제?” “엄마는 항상 그랬어”

요즘 꼬여 있는 것이 뭔가 했더니 집안 일이나 스케줄을 본인에게 묻지 않고 결정한다고 화가 나 있었나보다.


언제부터인가 큰아들에겐 보이지 않는 기대치가 있다. 운동도 잘했으면 좋겠고,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서 악기도 능숙하게 다뤘으면 좋겠고,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고, 착하고 순종적인 아들이었으면 좋겠고, 신앙적으로도 성숙한 아들이면 좋겠고. 승욱이가 장애가 있으니 큰아들이 승욱이가 못하는 부분까지도 다 해줄 수 있는 그런 아들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승욱이는 조금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도 칭찬일색과 난리가 나는데 큰아이는 잘하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그런 엄마로 점점 전락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치 승욱이의 부족한 부분을 큰아이를 통해서 보상받으려는 그런 나쁜 마음이 내 속에 자리잡고 있었나보다. 점점 더 큰아이에게 조급해하고 다른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서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안달을 내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참 나도 별 수 없는 아이를 들들 볶는 극성엄마인가? 그 동안 큰아이가 힘들어했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엄마가 앞으론 꼭 물어보고 결정할 게. 그리고 네가 뭐든 선택할 수 있게 할게. 됐지?” “엄마, 여기 음식 되게 맛있다. 다음주에도 또 따라와도 돼?”

괜히 부끄러운지 다른 말로 말을 바꾸며 매주 우린 토요일 아침을 함께 먹기로 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엄마 자격증을 따는 곳이 있으면 난 당장 가고 싶다. 자격 없는 엄마가 장애 아들와 비장애아들을 조화롭게 균형을 맞추며 키우는 것이 왜 이리 힘든 건지. 자격 없는 엄마노릇은 언제까지인지. 그리고 엄마노릇은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 건지. 평생 숙제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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