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9-03-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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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냄새

차가 무지하게 막히는 시간 승욱이 학교로 향하고 있다. 학교에서 하는 행사는 될 수 있으면 참석을 하려고 한다. 승욱이 교실로 들어서는데 모자를 안 쓰고 버티고 있는 아이가 있으니 그 아이가 승욱이다. 얼마 전에 밀짚모자를 사서 학교로 보내달라고 하더니 오늘 발표회를 위해서 인가보다. ‘에구 밀짚모자도 겨우 구했구먼. 될 수 있으면 쓰지. 녀석’ 엄마 마음과 선생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번 쓰지 않겠다는 모자는 결국 교실 한구석에 팽개쳐졌다.

마지막 연습을 한다고 반 아이들과 한 줄로 서서 율동연습을 하고 있다. ‘생각보다 잘하는데? 저렇게 어려운 동작은 어떻게 익혔지?’ 엄마는 못 가르쳐도 선생님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교육인 것 같다. 나보고 승욱이 율동은 가르치라고 했으면 난 벌써 포기했을 것이다. 손뼉치고, 한 바퀴 돌고 앞으로 나갔다가, 뒷걸음으로 제자리에 오고. 참 보면 볼수록 신기한 모습이다. 전부 시각장애 아동들인데 저렇게 노래에 맞춰서 함께 율동을 해 내다니…

교실을 방문할 때 될 수 있으면 승욱이에게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엄마가 교실에 와 있는 것을 알면 자세가 흐트러지고, 자꾸 나에게 와서 안기기 때문에 가능한 말을 하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멀리서 승욱이를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점점 승욱이 옆으로 가게 되었다. 철이 자석에게 끌려가듯 나도 어느새 가까이 승욱이를 바라보고 있는 순간, 아이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서 냄새를 쓰윽 맡더니 얼굴이 방긋해진다. ‘헉, 킥킥킥’ 내가 옆에 와 있는 것을 알아차렸나 보다. 아무 말도 않고 그냥 서 있기만 했는데 말이다. 손을 벌리고 나를 향해 걸어온다. “걸렸네” 내가 있는 쪽으로 냄새를 킁킁거리며 나에게 정확히 찾아왔다.


“엄마가 진짜 조용히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지?” 볼을 비비고 목을 끌어안고 난리가 났다. 팔짝팔짝 뛰고 완전 통제불가다. “엄마가 오늘 승욱이 발표회 하는 거 볼 거야. 밀짚모자 쓰고 무대 올라가서 틀리지 말고 잘해~” 괜히 엄마가 와 있는 것에 으쓱해져서 얼마나 거드름을 피워대는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정말 한번도 틀리지 않고 무용발표회는 끝이 났다. 나에게 한번도 엄마라고 불러주지 못하는 아들이지만 냄새만으로도 엄마인 것을 알아주는 것이 난 너무 고맙다. 부모와 자식관계는 눈으로 본다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귀로 듣는다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말로 표현한다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자식관계는 아무 조건없는 사랑이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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