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자친구 옷장을 뒤져라

2009-03-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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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프렌드 진’ 유행경향과 코디법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요 몇 년 디자이너들 간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없었다. 각기 그저 필 꽂히는 대로 만들면 그뿐이었으니까. 존 갈리아노처럼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만큼 페미니즘으로 베르사유 궁을 런웨이로 달군 이가 있었는가 하면 비비안 웨스트우드처럼 갈수록 전위적이고 매스큘린(Masculine, 남성복처럼 입는 것)하게 변해 가는 이도 있었고, 한국의 이영희 선생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생각할 만큼 리넨과 면에 담뿍 빠져 더 그럴 수 없을 만큼의 자연주의로 회귀한 요지 야마모토도 있었다. 물론 그 사이사이 드리스 반 노튼과 마르탱 마르지엘라처럼 북구 유럽 디자이너들의 그 나라 하늘과 건축물을 닮은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을 줄창 번복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드디어 올 봄,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유명 디자이너들이 나름 합의를 본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닌 ‘보이프렌드 패션’이다.
남자 친구 옷을 얻어 입은 양 박시하면서도 헐렁한 캐주얼에서부터 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를 연상시키는, 몸에 꼭 붙는 남성용 수트에 이르기까지 이브생 로랑도 울고 갈 매스큘린 룩의 진보는 그 어느 시즌보다 눈부시다. 아마도 전세계를 패닉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이 불경기에 여성들도 조신하게 스커트 둘러 입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는지도 모를 터. 어찌됐든 올 봄, 이번 시즌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해선 일단은 남자친구의 옷장을 뒤져야 하지 싶다. 그것도 격렬하게 말이다.


너무 박시한 것보다는
몸에 좀 피트되게 입는 게
진도 살고 몸매도 살 듯


■트렌드 & 브랜드


이번 시즌 가장 확실하고 편안하고 저렴하게 트렌드를 따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데님이다. 프리미엄 진 브랜드건, 일반 캐주얼 브랜드건, 일부 디자이너 브랜드건 너나 할 것 없이 보이프렌드 데님 한 벌 내놓지 않은 곳이 없으니까 말이다.

남자 친구의 구제 청바지를 둘둘 말아 입은 듯한 빈티지 느낌 물씬 나는 배기한 청바지가 지금 백화점 쇼윈도와 캐털로그를 달구고 있다. 그리하여 최근 몇 년간 하이웨이스트 진도 허물지 못한 스키니 진의 아성이 아마도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무너질 듯도 싶다.

그러나 캣워크를 걷는 모델이 아닌 바에야 보이프렌드 진은 스키니 진을 소화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옷에, 그것도 데님에 조금만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진의 생명은 바로 피팅에 있다는 것을 모두 알터.

프리미엄 진에 많은 여성들이 100달러가 넘는 거금을 과감히 투자하는 것도 결국은 그 피팅감 때문인데 보이 프렌드 진은 대개 같은 사이즈라도 한 사이즈 정도 크게 디자인 돼 오히려 입으면 헐렁하다 못해 자칫 뚱뚱해 보이기가 싶다. 트위기처럼 마르지 않은 바에야 웬만한 일반인이 입어서는 소화하기 힘들다는 말, 되겠다.

결국 브랜드 별로 나와 있는 디자인을 꼼꼼히 챙겨 입어보고 자신에게 맞는 브랜드를 고르는 것이 관건. 겉으로 보기에 이번 시즌 가장 예쁜 보이프렌드 진을 선보인 곳은 ‘리치 앤 스키니’(Rich & Skinny). 적당한 워싱과 배기한 디자인이 한눈에 예뻐 보이지만 입으면 너무 헐렁해서 그간의 타이트한 데님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어쩐지 2%가 부족해 보인다.

물론 7진이 선보인 보이프렌드 진처럼 ‘무늬만’ 보이프렌드 진인 것도 있다. 스키니 진처럼 몸에 타이트하게 달라붙으면서 7부 크롭트 팬츠로 디자인돼 피팅감은 예쁘지만 올 시즌 유행하는 보이프렌드 진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외에도 ‘조스’(Joe’s Jeans) ‘페이지 프리미엄 데님’(Paige Premium Denim), ‘시티즌 휴매니티’(Citizens of Humanity) 등에서도 나름 다양한 보이프렌드 진을 선보이고 있지만 결국 많이 입어보고 구입하는 것이 가장 안전할 듯 보인다.



■어떻게 입을까

가장 안전한 코디법은 바로 보이프렌드 재킷과 함께 입는 것이다. 아니, 안전하다는 말보다는 이번 시즌 교과서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안전한다고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것은 모델들이 입었을 때는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운 ‘핏’이지만 평범한 몸매를 가진 이에게는 아랫도리도 배기한데 윗도리까지 박시하면 정말이지 넝마를 입은 것처럼 어정쩡해 보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델 지망생이거나 왕년에 모델이 아닌 바에야 보이프렌드 재킷을 고를 때는 너무 박시한 것보다는 몸에 좀 피트되게 입는 게 진도 살고, 몸매도 살리는 비결이다.

이보다 조금 더 캐주얼하고 위켄드 룩으로 입고 싶다면 요즘 한창 유행하는 ‘꽃가라’ 시폰 블루종 블라우스와 매치하면 사랑스러우면서도 귀여운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여기에 얇은 파사미나 하나 척하니 둘러주고 무심한 듯 페도라 하나 써주면 올 봄 확실한 ‘트렌드 녀’로 탄생할 수 있을 듯 싶다.

그리고 여기에 어울리는 슈즈로 펌프스나 격식 갖춘 샌들은 사절이다. 블랙 또는 화이트의 빈티지 느낌 스니커즈나 최근 유행하는 글래디에이터 스타일의 굽 낮은 샌들이 보이프렌드 룩을 완성시켜 주는 일등공신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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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앤 스키니(Rich & Sk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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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진(7 For All Man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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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유행 최선두에 선 보이프렌드 진은 조금 낡은 듯 하면서도 이름 그대로 남자 친구 옷을 빌려 입은 듯 헐렁한 디자인이 대세다. 사진은 커런트 엘리엇(Current/Elliott)의 보이프렌드 진.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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