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상에서 만난 빙하…가슴속에서 눈물이

2009-03-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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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리만자로 등정기 <13>

“마지막이라던 고개가 또…” 아찔했지만
95%의 정신력, 남은 5% 정신력 혼신


드디어 스텔라 포인트(Stella Point)에 도착하였다.

그곳은 거대한 분화구였다. 얼마나 넓고 큰지 거리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 기쁨도 잠시 모두들 드러누워 버렸다. 긴장이 풀어진 탓인지 머리는 어지럽고 메스꺼움으로 앉아 있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미선씨는 여전히 힘든 사람들에게 물도 먹여주고 간식도 챙겨주고 있었다. 고소도 느끼지 않는 강인한 체력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조차 천사인 그녀는 이미 여자이기 전에 훌륭한 산악인임이 분명하다.

로먼이 이곳에서 10분 쉬고 정상인 Uhuru Peak까지 간다고 알려준다. “나 몰라~ 죽어도 못가~ 더는 못가~” 속으로 외치며 들은 척도 안했다. 10분이 지나니 기진맥진 했던 우리 2조 대원들이 하나 둘 주섬주섬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몇가지의 생각들, 나 혼자 남을까, 아님 기다릴까, 하산할까, 등으로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온 걸로 된 것 아닐까?

95%의 정신력과 또 남은 5%의 정신력으로 정상을 간다는데 너무 힘이 든 나는 왜 Uhuru Peak까지 가야 하는지 이미 목적의식을 잃고 있었다.

옆에서 같이 가자 졸라대는 남편, 미선씨, 로먼의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답답한 미선씨가 자꾸 나를 일으키며 가잔다.

나 안가! 싫어! 눈감고 고개만 설래 설래 흔들었다. 로먼이 나에게 여기에 앉아 있으면 한기가 들어 위험하니까 가이드와 함께 내려가든지 아님 천천히 올라오라고 하면서 남아 있던 포터에게 나를 부탁하며 우리 대원들을 데리고 떠난다.

순간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안 가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나를 두고 다들 떠나니 왠지 버림받은 느낌도 들고, 또 Uhuru Peak을 안 가고는 산행기 쓰기도 그렇고, 혼자 내려가기는 더더욱 싫고, 한기는 어느새 뼈 속까지 스며오고, 정말 진퇴양난이었다. 어쩔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고 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게다.

죽을힘을 다해 일어나 한걸음씩 옮겼다. 내 뒤에는 남아있던 포터가 따라오고 있었다.


한걸음 걷고 쉬고 또 걷고 쉬기를 반복하며 아주 조금씩 움직여 나갔다. 나의 머리 속은 이미 하얗게 되어버려 사고력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무의식중에 그냥 걸어갈 뿐이었다.

조금 가다보니 나보다 먼저 떠났던 우리 2조 대원들이 전부 쉬고 있었다. 속으로 내심 반가웠다. 그들도 기진맥진하기는 나와 마찬가지였으니까. 로먼이 나를 제일 먼저 반겨주었다. 얼른 내 팔을 끼며 부축하려는 것을 괜찮다며 팔을 빼었다.

그도 왜 힘들지 않겠는가!

옆을 보니 희수 언니와 Mrs. 한은 고소 증세로 토하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도 얼굴이 하얗다.

왼쪽으로는 수십미터되는 빙하(glacier)가 줄지어 서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빙하로구나.

얼음 속은 햇살로 인해 코발트 블루 빛으로 반사되어 보이고, 표면은 바람으로 인해 날카로운 칼날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저 빙하가 지구 온난화로 다 녹아내린다니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스텔라 포인트에서 Uhuru peak까지는 그리 높지 않은 경사로 1마일 정도 eho 보였고, 거리보다는 우리의 발걸음이 늦어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저 멀리 한사람이 이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누군지 볼 생각도 못하고 땅과 씨름하고 있던 나에게 최기선 등반단장님의 반가운 말소리가 들린다.

“거의 다 왔어요. 요거 넘으면 그다음부턴 평지야, 힘 하나도 안 들어요” 그 반가운 말씀에 없던 기운이 갑자기 샘솟는다.

정말이요!! 제일 쳐져 있던 나에게 다가오시더니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시면서 나의 백팩(backpack)을 가져가셨다.

괜찮아요 했지만 그걸 붙잡을 기운도 없었다.

백팩을 가져가니 거짓말처럼 다리가 쉽게 움직이는 거였다. 아니! 그 무겁지도 않은 백팩 때문에 내가 못 걸었단 말야? 속으로 의심스런 반문을 하며 그때부터 쉬지 않고 걸을 수가 있었다.

산 사람들은 하얀 거짓말을 참 잘한다. 고개 하나 넘고 보니 또 다른 언덕이다. 요거 넘으면 평지라더니… 아!! 속았다. 하지만 어쩌랴. 고개 묻고 본능적으로 발을 옮기다 보니 멀리 사람들이 서있는 정상이 보인다.

정말 다 온 거네!! 가슴속에서 눈물이 솟구쳤다. 정말 다 온 것이다. 그 기쁨의 전율이 온몸을 파도처럼 쫓고 지나갔다.

양은형 총무
<재미한인산악회>

문의: www.kaacinc.com

HSPACE=5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만난 빙하. 이 빙하들이 지구 온난화로 다 녹아내린다니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HSPACE=5
킬리만자로 서밋에 도착한 원정대. 서밋을 향한 마지막 언덕은 한걸음 조차 옮기기 버거운 그야말로 죽을 것 같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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