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킬리만자로 등정기 <12>

2009-03-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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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을 것 같은’ 고통의 산행중 일출이…

킬리만자로 등정기 <12>

그동안 수없이 훈련하며 반복했던 레스트 스텝(rest-step) 설명서.

붉은 태양 거대한 띠가 되어…
지겹도록 반복한 ‘레스트 스텝’
50~60도 경사서 중요성 실감


Mrs. 한과 희수 언니가 고소증세가 오는지 점점 속도도 늦어지고 힘들어했다. 아콩카구와를 다녀왔던 미선씨가 얼른 나서서 무조건 먹어야 기운 차린다며 싫다는 그들의 입에 스낵과 캔디를 넣어주고, 물도 먹여주느라 여간 애를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나 하나 챙기기도 벅차고 힘들다. 그러나 그녀는 제몸도 사리지 않고 남 챙기기에 여념이 없으니 너무 대견하고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찡해 왔다. 역시 경험은 큰 자산이다.

그녀가 있었기에 얼마나 든든한지… 정말 존경스러웠다.


우리 팀은 로먼과 미선씨의 격려로 전원 처지지 않고 올라갈 수 있었다. 또 하나 깨달은 것은 그동안 수없이 훈련하며 반복했던 레스트 스텝(rest-step)과 깊은 호흡(pressure breathing)이 얼마나 고산등반에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대원 모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레스트 스텝으로 페이스(pace)를 맞추었고 그 덕분에 죽을 만큼 힘든 산행을 조금이나마 견디었다. 특히 서밋(summit)을 향하는 트레일의 경사는 거의 50-60도가 돼보여 레스트 스텝이 아니면 도저히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야만이 그 순간의 여유로 호흡을 놓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고산에선 산소가 부족하기에 가슴을 곧게 펴고 폐 속 깊이 산소공급을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깊은 호흡을 해 주어야 한다. 한 대장은 평상시 산행할 때마다 이 2가지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하였었고, 몸소 시범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곤 했었다.

이번 산행에 많은 분들이 이 2가지를 적절히 유용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갑자기 등 뒤로 여명이 밝아와 환해지기 시작했다. 뒤돌아보니 지평선 위로 붉은 태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어 그 빛으로 거대한 붉은 띠를 이루어 비추었으며 하늘에는 새하얀 뭉게구름이 피어올라 장관을 이루었다. 킬리만자로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그 지평선 너머는 케냐라고 했다. 해가 뜨니 추위도 조금씩 가시어 한결 걷기가 편해졌다.

편해진 것도 잠시 정상이 멀리 보이기 시작할 무렵 우리 2조 대원들은 기력이 빠져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었고,

멀리 1조로 떠나셨던 박노익씨와 Mrs. 우가 지쳐서 앉아 계신 것이 보였다. 다가와 보니 Mrs. 우 얼굴에 피멍이 들어있었다. 여쭤보니 올라오다 넘어지셔서 다치셨단다. 불행 중 다행으로 눈 사이를 다치셨는데 큰일 날뻔 하셨다. 주력이 좋으신 분인데 안타깝게도 그만 뒤쳐지신 거다.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 정상은 왜 이리 가도 가도 끝이 없는지… 왜 이 고생을 해야만 하는지… 내 다리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갈 뿐이었다.

서밋이 보이는 트레일은 경사가 몹시 가팔라 우리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였다.

두세 발걸음 옮기고는 쉬고, 또 걷고 쉬기를 반복하면서, 속으로 누가 여기를 4.4마일이라고 했어? 하며 화를 내었다.

아무리 느린 우리 걸음걸이로도 이미 시간상으론 4.4마일을 훨씬 지났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이 거리를 잘못 계산한 모양이다. 우리의 페이스로 이미 8-9마일은 걸어온 것 같기 때문이다.

덕분에 생각보다 쉬울 거라는 예상은 뒤엎어진지 오래다.

정상을 향한 마지막 언덕은 한걸음조차 옮기기 버거운 그야말로 죽을 것 같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우리 조에선 누구 하나 포기하는 사람 없이 오직 정신력 하나만으로 버티면서 그 고통을 이겨나갔다.

희수 언니는 거의 실신상태인 듯 얼굴이 하얗다. 나도 점점 고소증세가 오는 모양이다.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 드러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스티브, Mrs. 한, 박노익씨와 조영만 약사님 역시 모두 고개를 숙인 채 무덤덤히 걷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의 속도가 늦어지자 한영세 등반대장은 먼저 정상을 향해 올라갔고 로먼이 우리를 안내했다.

정상은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이는데 그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고, 나는 속으로 다짐하기를 죽어도 저기, 스텔라 포인트(Stella Point)까지는 올라가리라는 의지로 죽을힘을 다해 걸어갔다.

우리가 오르는 정상은 넓은 칼데라 의 한 부분으로 마차메 루트(Machame Route)에서 만나는 곳은 스텔라 포인트라고 불렀다.

그곳에서 우후루 픽(Uhuru Peak)까지는 또다시 1시간을 더 가야만 한다.
이미 선두 그룹도 뒤에 오는 3조도 보이질 않았다.

문의: www.kaacinc.com

양은형 총무
<재미한인산악회>

HSPACE=5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가까운 스텔라 포인트. 이 곳은 분화구의 일정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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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에서 만끽한 일출. 지평선 위로 붉은 태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어 그 빛으로 거대한 붉은 띠를 이루어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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