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9-03-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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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 밀알의 밤(하)

강단에서 내려다보니 맨 뒷자리에 승욱이가 봉사자 학생과 함께 앉아 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는 모습이 마치 엄마인 나를 응원하는 것 같다. 그 모습에 떨렸던 마음이 평안함으로 바뀐 후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많은 인원이 강당을 가득 메웠음에도 마치 한사람이 앞에 앉아 있는 듯하다. 결론의 말을 맺으면서 “힘내세요… 함께 가요”라는 말에 몇몇 분이 울컥하는 듯 했다.

밀알의 밤 행사를 모두 마쳤다.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 옆에 서 있는데 아이가 시각장애인이다. “나만 힘든 줄 알았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승욱이와 엄마를 보니 너무 큰 도전을 받고 갑니다. 왜 내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했는지 왜 더 많은 기회를 주지 못했는지 부끄럽습니다. 그냥 감사합니다.” “아이가 몇 살이죠?” “아홉살이요. 시각장애와 자폐가 있어요.” “승욱이와 같은 나이네요. 우리 아이와 많이 닮았어요.” 같은 장애를 가진 엄마들은 주저리주저리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다. 그저 눈빛만 봐도 어느 정도 힘들게 아이를 키웠는지 알 수가 있다. 연락처를 주고받고 편할 때 다시 연락을 하기로 했다.

누군가 또 인사를 한다. “아, 아까 승욱이 코피 날 때 솜 주신 분?” 부부가 함께 와서 인사를 건네는데 처음 얼굴을 뵀을 때보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승욱이 어머님이 마지막 멘트로 힘내세요~라고 한 말에 얼마나 힘이 솟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다 힘들어하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서서히 행사장을 빠져나가면서 승욱이와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승욱이는 뭘 아는지 인사를 꾸벅하면서 귀여움을 받고 있다.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와 있던 것을 아는지 까불까불 펄쩍펄쩍 흔들흔들 장난도 넘치도록 치고 있다. 언제 코피를 펑펑 쏟았는지 기억도 없다. 뉴저지로 승욱이를 데리고 오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얼마나 걱정하고 후회했는지 모른다. 혹시 승욱이가 힘들진 않을까, 행사에 오히려 방해가 되진 않을까, 추운 날씨에 감기라도 걸리진 않을까, 5일간의 여정을 무엇을 하며 아이와 보내나 별별 생각으로 나의 마음을 묶어 놓았었다. 그런데 결론은 승욱이와 함께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다. 승욱이의 밝은 표정을 보고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가지고 가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소망의 언어를 말한다 해도 승욱이의 얼굴 표정이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뉴저지 밀알의 밤’을 잘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은 너무 보람된 길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힘을 받고 갔을까. 생각만 해도 우리가 뉴저지에 온 이유가 확실해진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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