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9-02-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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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 밀알의 밤(상)

‘밀알의 밤’ 행사장으로 진입하는 도로에는 봉사자들의 안내가 한창이다. 홍보가 잘 돼서 그런지 밀알선교단의 인지도가 높아서 그런지 내가 생각했던 인원보다 훨씬 많다. 그리고 장애가정과 비장애가정의 비율도 거의 반반이다.

저녁식사를 위해 한참 줄을 서서 승욱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승욱이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승욱이 얼굴을 보니 코 주변으로 피가 흥건하다. 코에서 끈적한 것이 흐르니 나에게 수화로 말을 걸었는데 전혀 알지를 못했다. “어. 승욱아, 코피나?” 급한 김에 테이블에 있는 냅킨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주변에서 우리를 보고 달려와 주셨다. 피를 보니 나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휴지로 코를 틀어막아도 계속 철철 피를 쏟고 있다. 누군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승욱이 어머니, 승욱이 너무 힘들게 한 거 아니에요? 애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코피를 다 쏟고.” 뉴저지 밤 공기가 너무 차서 호텔 안에 히터를 계속 틀어놨더니 너무 건조해져서 코피가 나는 것 같은데 주변에서 오해를 하시나 보다. 그나저나 피가 멈춰야할 텐데.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승욱이 어머님, 여기 솜 있어요. 이거로 막으세요. 휴지 갖고는 안 될것 같아요” 역시 코피에는 솜이 최고다. 몇 분 지나니 서서히 피가 멈추는 것 같다. 긴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저희 애들도 코피 많이 흘려요. 차에 항상 솜이 있어요” “어휴, 병원 가야 하는 줄 알았어요. 이렇게 많이 코피가 난 것은 처음이에요. 너무 감사해서 어쩌죠?”

“저희 아이 둘이 자폐입니다. 자폐 아이 둘을 키우다보니 준 의사가 다 되었어요. 오늘 말씀 잘 전하세요. 끝나고 뵙죠” 자녀 둘이 있는데 둘 다 자폐라니. 승욱이 얼굴이며 옷에 묻은 핏자국을 지우니 바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니콜스의 축사가 긴장한 나의 마음을 확 열어주었다. 승욱이는 봉사자가 와서 맡아주니 일단 안심이다. 순서가 되었다. 강단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니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더 나를 긴장하게 한다. ‘아, 이렇게 많은 선배님들 앞에서 감히 내가 말씀을 전하다니…” 짧은 시간동안 나를 응원하며 바라보는 장애인 가족들의 시선을 느꼈다.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곳에 오신 많은 장애가족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신앙으로나, 인생의 연륜으로나, 학식으로나, 장애에 대한 지식으로나 저는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엄마입니다”라는 말로 서두를 열었다.

이보다 더 집중할 수 있을까? 넓은 강당에 모인 많은 분들이 집중 그저 집중하는 모습을 나 혼자 보기에는 너무 벅찰 정도다. 처음에는 너무 긴장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의 뜨거움이 얼었던 나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기 시작했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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