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에스컬레이터 위의 행복

2009-02-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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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보이는 허드슨 다리를 건너면 뉴욕이다. 밤늦은 시간에도 끊임없이 자동차 불빛이 보인다.

오랜 시간 비행기안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와서인지 발에 스프링을 달은 것처럼 콩콩콩 뛰고 있다.

며칠간 묵을 호텔로 들어왔다. 짐을 정리하고 승욱이와 마주 앉아서 뉴저지에서 있을 일정을 이야기 해주었다. 도대체 알아듣기는 하는 건지 시차가 LA보다 3시간이 빠르니 밤 12시가 되도 정신은 더 맑아지는 것 같다. 다행히 승욱이가 일찍 잔다.


“승욱, 남들은 딸을 낳아야 비행기를 탄다는데 엄마는 아들을 둘이나 낳았는데도 비행기를 몇 번이나 타고 정말 출세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오늘 같은 일이 올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참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우리가 어쩌다 뉴저지까지 오게 되었는지 너무 기적 같은 일이다. 뉴저지 밀알의 밤을 잘 마치고 돌아가길 기도하자.”

아침 일찍 호텔에서 주는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하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왔다. 밤에 도착할 때는 호텔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호텔에서 100미터 옆으로 백화점이 있다. 승욱이와 함께 백화점을 들어갔다. 백화점 1층을 대충 둘러본 후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순간 얌전하던 승욱이의 성격이 나오기 시작이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손잡이를 혀로 핥고 얼굴로 비비고 콩콩 뛰고 까르르 웃고.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2층으로 올라온 뒤 계속 타자고 손을 잡아끄는 통에 태어나서 에스컬레이터를 제일 많이 탄 것같다.

“승욱, 엄마가 20번도 더 태워 줄테니까 소리는 지르지마, 뛰지 말고 알았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1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1층으로 1시간은 족히 에스컬레이터 위에 있었던 것 같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들을 위해 현기증이 나도록 에스컬레이터 위에 있다.

“아들아, 엄마가 오늘 또 너를 배웠다. 에스컬레이터를 이렇게 좋아하는 줄을 말이야. 눈으로 보는 즐거움이 없으니 타는 즐거움으로 대신하는구나. 어차피 시간도 많은데 많이 타고 가자.”

그렇게 승욱이와 난 에스칼레이터 위에서 한참을 행복했다. 우리가 뉴저지에 와 있는 것도 잊은채 말이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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