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간 시간 변신… 역시 신비의 산

2009-02-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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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리만자로 등정기 <8>

선인장·침엽수·질경이…
비 맞으며 2시간 산행
캠프 도착하니 뚝 그쳐


오늘은 등반 둘째날이다. 아침9시에 출발이 예정되어 있고 오늘은 Machame Camp에서 Shira Camp로 이동하게 된다. 1만200피트(3,100m)에서 1만2,600피트(3,840M)로 고도는높지 않고, 거리도 5.6마일(9km)로 비교적 쉬운 일정이다. 이곳의 생태계는 ‘moorland’이다.

이번 원정대원 대부분은 연세가 60이 넘은 분들이 많다. 주변사람들이 그 나이에 뭐하러 그 힘든 산엘 가냐며 핀잔도 듣고 걱정 어린 소리도 많이 들으셨다고 한다. 물론 나 또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시샘어린 시선을 많이 받은 터였다. 남들 눈에는 그렇게 비추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전은 언제이건 늦지 않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할 수 있다는 이 자신감이 얼마나 나의 인생을 기쁘게 하고 긍정적인 삶으로 바꾸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벌써 고소인지, 희수언니, 남진언니, 소연 약사님, 하 약사님은 지난 밤 한잠도 못 주무셨단다. 큰일이다. 앞으로 남은 일정을 소화하려면 잠을 충분히 자주어 체력을 회복해야만 하는데….

텐트생활을 며칠 하다보면 그러지 않아도 체력 소비가 많아져 온몸이 피곤해진다. 피로회복엔 잠이 최고이고 그래야만 꽉 짜인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아침 식사시간, 하 약사이 잠을 못 주무셔서 아침이라도 잘 먹어 에너지 보충을 해야만 한다며 햇반과 고추장아찌, 밑반찬으로 식사를 하셨다. 약사님은 지난번 Aconcagua 원정때 정상에 실패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으신 모양이다. 이번엔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또 다지고 계신 것이다.

우리는 계란프라이(이곳의 계란 노른자는 흰색에 가깝다. 그래서 계란프라이가 하얗다)와 소시지, 오트밀 스프 그리고 토스트로 아침으로 먹었다.

저마다 열심히 아침식사 하는 모습을 보니 굳은 의지가 뜨겁게 느껴진다. 한영세 등반대장이 오늘은 거리가 짧은 대신 가는 길이 가파르기(steep)때문에 쉬운 코스는 아니며, 어제는 오후 늦게 캠프 사이트에 도착해 많이 쉬지를 못하였으니 오늘은 속도를 조금 빨리 내어 일찍 캠프에 도착하도록 하자는 말씀을 했다. 많이 쉬는 것만이 체력보충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면서….

무조건 따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9시에 출발한 우리는 거의 쉼 없이 점심때까지 산행을 하였다. 12시쯤 되어 따뜻한 차와 함께 준비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나니, 아침에 구름 한점 없이 화창했던 하늘은 어느덧 먹구름에 가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레인 기어(rain gear)를 입거나 판초를 꺼내 입고는 출발을 서둘렀다.


나는 판초를 입고 산행을 하였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완전히 덮이지 않은 소매 속으로 빗물이 스미고 밑에까지 치렁해진 자락은 나무에 걸리기 일쑤다. 방수재 자킷을 준비하지 않은 내 불찰이다.

다행히 바람이 없어 춥지를 않았기에 모처럼 비를 맞으며 운치 있고 분위기 있는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가지런히 내리는 비를 맞으며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니 수목이 비에 촉촉이 젖어 뚜렷한 제 색깔들을 찾아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경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엔돌핀이 솟았다.

트레일 옆으로 늘어선 선인장과의 침엽수들과 가끔씩 보이는 Orchid, Lily 꽃들, 엉겅퀴 모양의 들풀, 질경이처럼 땅으로 낮게 늘어서 피어 있는 노란 꽃의 무리...

누가 아프리카를 메마른 땅이라고 했던가! 이렇게 푸르고 아름다운 산세를 가진 곳이 바로 아프리카 한자락에 있는 킬리만자로인 것을… 여자들이 많다보니 그 절경을 감상하며 감탄하느라 걸음이 자꾸 늦어지곤 했다. 용암으로 흘러내려 이루어진 굴곡진 현무암 바위골과 비로 인해 짙게 푸르러진 수목들, 흙과 작은 바위들 어느 것 하나 어우러지지 않는 것이 없었다.

정글을 지난 후엔 초목의 높이가 현저히 낮아져 큰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하얀 이끼는 나무마다 늘어져 운치를 더해주고, 그 멋스러움에 K2는 이끼 한마디를 잘라 모자에 달고는 서낭당 같다며 덩더쿵 춤까지 추워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미선씨는 정말 분위기 메이커이다.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 그녀의 체력도 부러운 일이지만 쉼 없는 수다와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 그녀는 온 대원들의 웃음 전도사이다.

어느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이어지는 그녀의 끝없는 감탄사! 정말 그녀는 아이같이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여인이다.

두어 시간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한우리는 Shira Camp에 도착하였다.

캠프에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었다.

양은형 총무
<재미한인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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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산 킬리만자로는 시간마다 그 모습을 바꾼다. 이날 등정에는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해 힘들었다.

HSPACE=5
베이스캠프에서 두 번째 캠프로 이동하는 킬리만자로 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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