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9-01-17 (토)
크게 작게

▶ “스트레스야 물러가라”

한국에 온 이유 중 하나는 건강검진 때문이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 감기로 딱 한번 병원에 간 일 외에 병원에서 제대로 검사를 받아 본 적이 없다. 드디어 건강검진을 받는 날이다. 전날 저녁 9시부터 물도 먹지 말라는 말에 아침 금식을 하고 일찍 병원을 찾았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이왕 검사하는 것이니 위 내시경과 장 내시경 검사까지 하기로 마음먹고 부지런히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시력검사, 청력, 부인과 검사, 한방검진, 소변검사, 피검사, 치과검사까지 일사천리로 척척 검사를 하는데 그중 장 검사를 위해 간호사가 탁자에 두고 간 2리터짜리 물통을 열어 컵에 따라 마시는 순간 “헉, 이게 뭔 맛이냐? 조미료에 설탕 탄 맛이 속을 뒤집어 놓는다. 정말이지 장검사용으로 마시는 물을 정말 사람이 먹을 수 없는 맛이다.

그렇게 물을 마신 뒤 환자용 가운을 입고 처량하게 병원복도를 걷고 있었다.

간호사가 와서 말한다. “완전히 깨끗하게 장이 비워져야 해요. 자꾸 걸으세요. 그리고 부지런히 물도 마시고요. 설탕 더 같다 드릴까요? 어젯밤에 음식 많이 드셨나보네.” 같이 검사를 받는 사람들을 보니 나보다 물도 덜 마셨는데 검사를 하러 간다. 코를 틀어막고 마지막 잔의 검사용 물을 마셨다. 정말 고문이 따로 없는 것 같다. 2리터나 되는 검사용 물을 다 마시고도 세 차례나 화장실을 더 다녀오고서야 검사를 할 수 있었다.


고생해서 검사한 장 내시경 결과는 너무 정상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곳 여기저기가 많이 고장이 나 있었다. 치과치료도 급했고, 안과검사도 다시 받았고, 약을 먹어야 하는 것도 있었고, 가장 급선무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진단을 받았다. 스트레스 지수가 너무 높게 나왔다는 말에 항상 하하하 웃는 나도 무언가 알 수 없이 스트레스를 무진장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기 때문에 스스로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건강검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무엇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승욱이의 장애 때문에? 가정환경 때문에? 경제문제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겉으로는 뭐든 알아서 척척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마음속에는 걱정과 근심과 불안과 염려가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을 편하게 잘 다스리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스트레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솔직히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건강검진을 통해 나의 건강상태도 확인을 했지만 나도 알 수 없었던 스트레스에 관해 알게 되어 다행이다. 의사 선생님 말대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이 상태로 계속가면 온몸이 종합병원이 된다고 하신 말씀이 다시 한번 나의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스트레스야, 물러가라!! 내 스스로 나의 몸과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을 배운 날이다.

김민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