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9-01-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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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부부의 조건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났다. 기본으로 결혼생활 10년씩은 다 넘긴 친구들이지만 아직 애들을 챙겨줘야 하는 나이들이다.

수다를 한창 떨다가 괜히 미안한지 남편에게 눈짓을 보내는 친구들을 보니 참 귀엽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밥 먹는 것과 수다가 대충 끝나고 부부끼리 서로 자리를 잡아 앉았다. 부부가 다함께 둘러앉으니 참 보기가 좋다. 한국의 이혼율이 세계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친구 중에는 이혼한 친구가 아직 없다. 연애시절부터 봐 오던 커플들은 생김새까지 닮아있는 것에 너무 웃음이 났다.

친구 부부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있는 부부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신혼 때는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싸우고, 아이가 생기면 육아문제로 싸우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친정과 시댁 일로 싸우고, 어느 정도 먹고 살만 하면 남편이나 아내가 어딘가 서로가 신뢰할 수 없는 조건에 빠져있어서 싸우게 되는 것이 부부인 것 같다. 그런데 친구들 부부를 자세히 보니 모두들 대화를 많이 한 흔적이 보인다.


대화가 있는 부부는 싸워도 뒤끝이 없는 것 같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 까에 대한 대화가 아니라 부부를 알아 가는 서로의 감정에 솔직한 대화가 있는 가정이 가장 행복해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포기할건 일찌감치 포기한 것이 행복한 부부의 조건에 한몫을 한 것같다.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 것으로 시간낭비, 말 낭비, 감정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받아 들이는 것이 때로는 약이 되는 것 같다.

쌀쌀한 저녁날씨에 헤어지는 발걸음이 총총 걸음이 된다. 단란한 가정들이 각자 타고 온 차에 온 식구가 함께 타고 돌아가는 모습을 앞으로 몇 년 후에 또 볼지 모르겠지만 오늘날처럼 부부생활이 계속된다면 우리모두가 행복한 부부로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아갈 것 같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남편에게 친구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어서 너무 보기 좋다. 우리만 지지고 볶고 싸웠던 게 아닌가봐.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가봐. 그럼, 이 세상에 처음부터 백퍼센트 만족하고 사는 부부가 어딨어. 살면서 서로 맞추고 고치고 바꾸고 사는 거지. 마누라만 바꾸지 않고 다 바꿔야해. 나쁜 생각, 나쁜 행동, 나쁜 버릇도 다 당신 말로 천냥 빚을 갚았네. 오늘 친구남편들을 만나더니 자극 많이 받았나보네? 왜이리 말을 이쁘게 하지?

오랜만에 남편과 손을 잡고 오랫동안 밀린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우리의 대화는 아이들이 주제이지만 오늘만큼은 서로에게 하고싶은 이야기 부탁의 이야기를 하며 한강변을 한참을 걸었다. 서울의 밤바람이 점점 매서워진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체감온도는 그저 따뜻하기만 했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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