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12-27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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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참으로 분주한 한해를 보냈습니다.

SBS 스페셜 ‘네 박자의 사랑’ 촬영과 ‘굿모닝 엔젤’의 출간으로 상반기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녔고, 하반기는 친정어머니의 심장수술과 이사, 교회 집회와 한국 방문으로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렸습니다. 아마도 태어나서 제일 많은 사람들은 만났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참, 승욱이네가 무엇인지 어떻게 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는지 개인적으론 도저히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던 한 해였습니다. 이젠 숨을 수도, 숨길 수도 없는 승욱이가 되었습니다. 역시 매체의 위력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다큐를 통해, 책을 통해 또 신문의 기사와 라디오 인터뷰로 승욱이를 많은 분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폐암 말기 아버지의 생명이 5개월 남았다는 의사 선생의 말씀을 듣고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효도하려는 마음으로 결심하고 글을 신문에 연재한 것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글이 연재된 지 3년하고도 8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면으로 글이 나간 양이 190편의 글이 소개가 되었습니다. 함께 웃고 울며 공감하며 때로는 망가진 저의 모습도 공개가 되었고, 때로는 진지한 모습과 가족 간의 갈등의 이야기까지 거짓 없고 꾸밈없이 편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전달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장애 가정도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셨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네. 장애 가정이라고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오감으로 느끼고 살며 사랑하며 다투고 격려하며 다독이며 살아갑니다. 요즘 승욱이는 수화를 더 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단어로 시작한 수화가 이젠 제법 문장을 만들어 표현을 합니다. 승욱이를 보고 있으면 너무 신기할 뿐입니다. 만날 때마다 콩나물 자라듯 쑥쑥 크는 아이, 만날 때마다 새로운 행동을 하는 아이, 만날 때마다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승욱이를 뺀 나머지 세 아이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12세, 11세, 10세, 9세짜리 아이들이 저의 생각보다도 저의 기대보다도 너무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주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분들이 기도하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제일 갖고 싶은 것이 종합선물세트였습니다. 그 안에는 보기만 해도 행복할 정도로 갖가지 과자와 사탕들로 언제나 저의 마음을 사로잡곤 했습니다. 예쁜 옷도 있고, 새로 나온 인형도 있었지만 저는 언제나 “민아는 올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받으면 좋겠어?” 한참을 생각하고 미안한 듯 “종합선물세트” 하루에 하나씩 꺼내먹는 재미가 긴긴 방학의 초반을 아주 행복하게 했었습니다. 이제 저의 아이들이 그때 “종합선물세트가 제일 갖고 싶어…”라고 말했던 제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도 없었던 제가 어른이 되어 우리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얘들아, 이번 크리스마스에 뭐 갖고 싶어?” “게임기하고 핸드폰” 너무도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이 너무 흔한 미국에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배가 고픈 것이, 헐벗은 것이, 심심한 것이 무엇인지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자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이들과 부대끼며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분명 세월이 지나 오늘을 돌아볼 때 “그때가 좋았어. 그때가 좋았지”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순간이 제일 행복하고 그저 감사합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모든 것이 감사해서 그저 눈물이 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올 한해 받은 복들을 세어보며 2009년 밝아 오는 새해에도 계속 복 받는 해로 이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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