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 바라보기- 박상효가 된 내 친구

2008-11-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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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장독 속 오래된 간장처럼 진한 친구가 있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 만났고, 긴 머리에 깡마른 소녀인 내 친구는 매일 아침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전 날 외운 영어단어를 자신이 자신에게 테스트하며 아침을 시작했었다. 그리고 항상 내 친구 이어폰에서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헤비메탈 음악이 흘렀었다. 보기에는 완전히 소녀인데 어찌 그렇게 터프한 음악을 좋아하는지 싶었지만 나는 그런 친구가 좋았다. 그런 친구가 어느 날 자기는 미술학 공부를 하고 싶다고 내게 말했다. 워낙 공부를 잘했던 내 친구가 선택한 길을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미술평론가가 되는 공부를 시작했고 우리는 대학생이 되었다. 내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림을 그리면 내가 좋게 평가해 줄게.” 또 그러던 어느 날 내 친구가 말했다. “정연아, 나는 아무래도 영어가 좋아.” 그렇게 말하고 난 후 내 친구는 정말 대학 4학년 때 휴학을 하고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나는 그 날 공항에 따라갔다.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며.

그해 여름 방학에 나는 내 친구를 보러 영국으로 날아갔다. 태어나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갔다. 내 친구가 있다는 영국으로 친구의 어머니가 부탁하신 순대와 팔도 비빔면이 든 음식 가방을 들고 무작정 친구를 찾아갔다. 그렇게 나는 내 친구 덕분에 근 한 달을 함께 영국에서 생활했고, 나와 친구는 유럽 여행도 같이 했다. 그러며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우리 부모님들도 유럽 여행 시켜 드리자고 우리는 어느 스위스 강가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하며 웃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내 친구는 자기 전공과는 달리 학교를 마치고 나서도 계속 영어 쪽 일을 하게 되었다. 항상 바빠 보이는 내 친구. 우리는 서로 바빠 만나기 참 어려웠다. 그래도 연락이 닿아 만나기만 하면 그 날 하루는 웃으며 이야기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러다 나는 8년 전 미국에 남편의 공부로 이사를 왔고, 우리는 서로 또 보자고 웃으며 헤어졌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친구에게서 내가 칼럼을 쓰고 있는 인터넷 쪽지로 생각지도 않게 연락이 왔다. 그동안 영어 학원을 차려 바빴는데 학생들을 연수 보내고, 유학을 보내다 내가 있는 사이트에서 우연히 나를 발견했단다. 얼마나 기쁜지 처음에 친구가 보내온 쪽지를 연 순간 나는 한 십년은 못 만난 친구를 본 듯 울어버렸었다. 아마도 뜻하지 않은 곳에서 친구를 만나서 더 놀랐던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인터넷 속에서 다시 만났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내 친구는 내가 뜻하지 않게 인터넷에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던 적에 익명 속에서 실명으로 나를 위하여 대변해 주었다. 그 친구가 다음해 한국으로 나온 나에게 말했다. “정연아, 인터넷을 너무 깊게 생각하지마! 너는 고등학교 시절에 네 모습처럼 그렇게 열심히 그림을 그려. 그리고 우리 성공해서 만나자.” 그렇게 말하며 나를 안아주었던 내 친구가 언젠가부터 내가 칼럼을 쓰고 있는 사이트에서도 유명해져 가고 있었다. 모두들 미국에서 영어의 중요성을 잘 알기에 언젠가부터 영어로 유명해진 내 친구 이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볼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제 서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인터넷에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소포 하나가 배달되어져 왔다.

“내 소중한 친구 정연에게, 먼 곳에 있어도 그 따뜻한 마음이 곁에 있는 벽난로처럼 전해지는 내 친구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라고 쓰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쉬운 회화책’ 박상효 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친구가 너무 멋져서, 내 친구가 너무 자랑스러워서. (친구가 일을 하며 새로 갖게 된 박상효의 이름을 그대로 적습니다.)

김정연
<화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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