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각하는 삶- 클래식 바이러스

2008-11-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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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카운터포인터’(대위법)라는 영화가 있었다. 베토벤,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 등의 대표적 클래식 음악들이 나오는 음악영화였다.

2차 대전 중에 미국 오케스트라 순회단이 독일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마침 적군 지휘관은 음악을 사랑하는 장군으로 이 순회단을 잘 예우하며 많은 연주를 하도록 배려한다.

그 와중에 미군 낙오병 둘이 숨어 들어오고 그들을 찾던 매서운 초록빛 눈의 장교는 연습실 단원들 속에 섞여 있는 그들 앞으로 다가간다. 긴장하고 있는 그들에게 손에 쥐고 있는 트롬본을 불어보라고 한다. 망설이며 일어서서 부는 곡은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의 힘찬 첫 소절이었다.


기분 잡친 장교가 그 방을 나간 후 단원들은 그들을 탈출시킬 작전을 꾸민다. 마침 매력적인 여성 단원은 자기를 짝사랑하는 장군의 마음을 알고 데이트를 청한다. 장군의 방안 식탁에 촛불이 켜지고 와인을 마시며 은밀한 시간을 갖는 동안 두 낙오병은 높은 종탑 꼭대기로 연결된 외줄을 타고 올라감에 맞추어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배경음악도 점점 고조되어 올라간다.

장군은 하필 이 곡이 연주되는 것에 심상찮은 의도가 있음을 아는 듯한 말을 하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밖에서는 초록 눈빛 장교가 탈출병을 찾아 뒤지는데 드디어 음악이 최고음으로 치달을 때 외줄에 매달린 미군을 사살하는 총성과 선율은 아우러지고 단원들은 참담한 얼굴을 하며 연주를 계속한다.

결국 패전한 독일군은 퇴각명령을 받고 냉혹한 초록빛 눈의 장교가 오케스트라 단장을 사살하려는 낌새를 눈치 챈 장군은 연습실 한구석에서 공포를 쏘는 것으로 단장의 목숨을 살려주고 떠난다. 그러면서 ‘서로가 편안한 관계로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음악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 앞에서는 너와 나 사이에 어떤 이념도 체제도 쟁점화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오래된 이 영화가 떠오른 이유는 근래에 한국 TV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음악 드리마가 있어서이다.

‘베토벤 바이러스’

제목부터 심상치 않더니 급기야 이름 그대로 열풍이 무섭게 번져나가고 있는가 보다. 드라마 구성상 다소 희화된 면도, 그리고 약간의 억지도 없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안방 드라마의 천편일률적이고 고질적인 상투적 소재의 빈곤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우선 반가운 일인데 더욱이 소재조차 잡기 어려운 클래식 음악이었다는 데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주인공 지휘자는 오만방자하가 이를 데 없고, 잔인할 정도로 상대를 밟아버리고 까뭉개 버리는 말투의 인물이다. 그 뿐인가. 등장하는 단원 구성으로는 치매 걸린 왕년의 노장, 카바레 직장 출신, 악보하나 읽을 줄 모르는 청년 등, 하나 같이 비정상적인 여건의 인물들 투성이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우리를 붙잡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것은 아마도 어찌 보면 이 모든 부족한 이들이 바로 우리들 자신이고, 그러한 불완전 속에서 서로 보완해 가며 아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휘자의 밉상스런 말투는 겉모양일 뿐 그의 행동에 숨어 있는 모습에서는 우리가 간직해야 할 순수성을, 무시당하고 채이면서도 굴하지 않는 단원들은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기에 더 공감이 가는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가 쏟아내는 클래식들 또한 고통을 통해서만이 나올 수 있는 환희와 그를 어루만지는 신의 손길들인 것을 보면 오케스트라가 지휘자를 중심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아름다운 화음으로 가듯, 우리도 보이지 않는 손을 내 마음 한 가운데 두어야 우리의 삶이 최고의 선으로 다다를 수 있다고 시사하는 게 아닐까.

로라 전
<전 건강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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