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11-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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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가기 위한 가장 큰 준비


한국을 가기로 결정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이번 한국행은 여러 달 전부터 생각했던 것인데 친정엄마가 갑자기 쓰러지시는 바람에 일정이 미뤄진 거다. 한국에서는 ‘내 동생 승욱이’라는 제목으로 동화책이 만들어지고 있다. 형인 승혁이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동화가 봄에 동화작가를 통해서 글이 완성되었고, 지금 그림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림을 보면 내가 뭘 알겠냐마는 그래도 ‘굿모닝 엔젤’을 만들 때도 거의 작업에 신경을 못 써 드려서 이번엔 큰맘 먹고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한 달 간이나 집을 비우는 일이 처음이다. 세 아이는 어느 정도 훈련(?)을 시켜서 별걱정이 없는데 한 아이가 제일 걱정이다. 승욱이. 주말에 집에 오는 것을 주중 내내 기다릴 텐데 이걸 어쩌나. 승욱이를 기숙사에서 찾아오는 일을 같은 기숙사에 있는 태은이 아버님께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토요일에 하는 언어치료는 내가 한국에서 올 때까지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두주 후면 한국을 가야 하기 때문에 사무실에서도 인수인계로 정신이 없다. 사무실 정리를 한창 하는데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저 효종이예요. 한국에서 지난주에 들어왔어요. 승욱이랑 애들 잘 있죠? 승욱이 보고 싶어요. 주말에 잠깐 집에 들를게요.” 효종이라는 친구는 지난해에 승욱이 영상을 만들어주고 또 이번 봄에 SBS 스페셜 찍을 때 미국 현지 코디로, 조감독으로 수고해 준 친구다. SBS 촬영팀이 성실하고 반듯한 효종 학생을 보고 여름 내내 한국으로 불러가서 EBS에서 만드는 다큐에 함께 동참시켰다. 두 달 가량 ‘그린랜드’라는 곳에 가서 다큐를 완성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주말에 효종이가 집에 오니 애들이 신이 났다. “효종씨, 저도 한국 가요. 여러 가지 일 때문에…” “그럼, 승욱이는 어떻게 해요?” “픽업하는 것을 아는 분께 부탁드렸는데 아마 언어치료실을 못 갈 것 같아요.” “제가 주말에 승욱이 픽업해 주고 언어치료실이랑 사랑의 교실이랑 데려다 주고 기숙사에도 데려다 주면 안돼요?” “네~에? 정말 효종씨가 그 일을 다 해줄 수 있겠어요?” “한 달간 네번은 승욱이 볼 수 있어서 전 너무 좋아요. 그런데 승욱이가 저하고 있는 거 좋아할까요?” “그럼요, 승욱이가 효종씨를 얼마나 좋아한다구요.”

뜻밖에 효종씨의 제안으로 승욱이가 내가 없어도 매주 하던 스케줄을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생각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한국으로 가기 일주일 전 승욱이 픽업을 나와 함께 해본다고 효종씨가 집으로 왔다. 승욱이를 데리러 가면서 효종씨가 먼저 “정말 승욱이를 만나고 모든 일들이 잘 돼가고 있는 것 같아요. 작년 봄 승욱이의 영상을 찍은 후부터 좋은 만남, 좋은 일들이 계속 생겼어요.” “그건 효종씨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승욱이 때문이 아니에요. 효종씨는 너무 착해서 누구를 만나도 사랑받고 어디를 가도 좋은 일을 할 거예요.” “승욱이 하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더 고맙죠. 제가 믿고 승욱이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어요? 승욱이와 관련된 사람들을 효종씨가 전부 알고 있으니 제가 일일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되고 전 너무 좋은데요?”

한국으로 가기 위한 가장 큰 준비가 끝이 났다. 승욱이를 책임지고 맡아줄 사람이 짠하고 나타나니 마음도 몸도 갑자기 가벼워졌다.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으로 나가는데 난데없이 우리 큰아들이 훌쩍 울기 시작이다. “엄마, 몇 밤 자고 온다고 했지?” “스물하고도 여덟 밤” “한참 걸리겠네? 마지막 축구시합 날에는 엄마가 와 줄 거지?” “그럼, 엄마가 마지막 시합 때는 가서 크게 응원해 줄께. 할머니랑 이모 말 잘 듣고 있으면 엄마가 선물도 사다 줄 거야. 그리고 동생 잘 부탁해. 알았지? 승욱이도 너처럼 엄마가 없는 것을 알면 슬퍼할 거야. 잘 놀아 주고…” 기가 팍 죽은 얼굴로 “음…”

내가 한국 간다고 했을 때 제일 신나하던 큰아들이 뒤늦게야 눈물을 찔찔거린다. 생각해 보니 엄마가 없으면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은 거다. 하도 내가 없는 것을 신나하기에 승욱이만 신경을 썼는데 눈물 흘리는 아들을 뒤로하고 공항으로 가는 걸음이 괜히 쇠걸음이다. 에구. 아들아. 그러기에 있을 때 잘하라고 했지?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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